비만치료제 '리덕틸'의 개량 신약 허가를 둘러싼 한미약품과 미국 애보트사 간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간담회가 지난 16일 오후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열렸다. 이날 간담회에서 애보트측과 한미약품측은 '미국산 리덕틸과 한국산 슬리머가 동일한 품목인가'를 놓고 열띤 공방전을 벌였다. 슬리머에 대한 품목 허가를 내주기 위해선 리덕틸과 동일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일한 품목'에 대한 유권해석을 내리는 데 상당한 진통을 겪어야 했다. '의약품 등의 안전성·유효성 심사에 관한 규정'의 어디에도 '동일한 품목'에 대한 설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도 식약청 관계자는 "무엇이 동일하냐의 문제는 그때 그때 다르다"며 둘러대기에 급급했다. 심지어 "이것은 철학적인 문제"라며 발뺌하기까지 했다. 간담회 막바지에 한 참석자가 "식약청이 이 부분을 명확히 해석하지 않는 한 논의가 진전될 수 없다"며 항의하고 나서야 식약청 관계자는 "임상실험 자료를 공유한다면 동일하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산 개량 신약을 허가해주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다. "왜 그런 의견을 슬리머에 대한 임상실험을 허가할 때 미리 밝히지 않았느냐"며 한미약품측이 따지자 식약청 관계자는 "품목 허가와 임상실험 허가는 다르다"고 맞섰다. 임상실험은 품목허가를 따내기 위해 실시된다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알 수가 있다. 국내 최고 전문가의 설명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물론 한미약품 쪽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개량 신약을 신청하기에 앞서 식약청에 관련 규정에 대한 해석을 의뢰하지 않은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관련 규정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신약허가 신청과정에서부터 국제 분쟁에 휩쓸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국내 제약사의 신약 개발 의지를 꺾어버릴 수 있다는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식약청은 행정지도를 포기한 것이냐"고 따지던 한미약품 관계자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임도원 과학기술부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