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국내 기업들의 채산성 악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월 수출이 6개월 연속 2백억달러대의 호조를 이어가는 것은 물론 유가에 민감하게 출렁이던 소비자물가도 3% 후반에서 비교적 안정돼 있다. 정부는 작년 여름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가 배럴당 30달러를 넘어섰을 당시 '3단계 비상대책'을 긴급 발표했던 것과 달리 당분간 유가추이를 좀더 지켜보며 대책의 수위를 조절한다는 방침이다. ◆'원고'(高)가 고유가 완충역할 유가 고공행진의 직격탄에서 국내 경제가 한발짝 비껴나 있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우선 '환율 상쇄효과'를 내세우고 있다. 최근의 유가 상승이 원화강세와 맞물려 국내 석유제품 가격 상승을 완충하고,수입물가 하락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0원 떨어질 경우 국내 휘발유가격(공장도가격 기준)은 ℓ당 3원 인하되는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최근 보고서에서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최근의 실질유가는 지난 80년의 50%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또 실질유가와 석유원단위(국내총생산 대비 석유소비량)를 곱한 '유가영향지수'를 산출한 결과,현재 유가수준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충격의 크기가 2차 석유파동기의 정점에 비해 44%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박봉영 KIEP 부연구위원은 "지난 79년 2차 석유파동 당시에는 유가가 5개월 만에 2.6배 수준으로 급등했지만 최근에는 17개월 동안 1.8배 상승하는 등 충격이 상대적으로 덜하다"고 말했다. ◆산업고도화도 충격 완화 한몫 환율 효과와 함께 국내 에너지원이 LNG(액화천연가스) 등으로 다원화되면서 1차에너지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95년 62.5%에서 지난해 45.6%로 10년 사이 16.9%포인트 떨어진 것도 고유가 충격완화의 요인으로 분석된다. 전체 수입액에서 원유수입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 85년(19.6%) 이후 점차 줄어들어 작년에는 16.7%까지 떨어졌다. 석유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반도체 전기ㆍ전자 등 지식기반산업이 국내 산업의 주력으로 떠오른 것도 국내 산업의 고유가 충격 흡수를 돕고 있다. 지난 70년 지식기반산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불과했지만 2000년에는 42.8%로 30년 사이 27.8%포인트 확대됐다. 또 유가급등으로 오일달러 수입이 늘어난 중동국가들이 상품수요를 늘리고,미국 국채투자를 확대하면서 세계 경제의 선순환을 이끌고 있는 것도 국내외 경기를 상대적으로 안정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상춘 논설위원·이정호 기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