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에세이] '말아톤' 완주 보고서 ‥ 신헌철 < SK㈜ 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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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헌철 < SK㈜ 사장 hcshin@skcorp.com >
지난 13일 동아서울마라톤대회에 참가했다.
2만여명의 선수들이 광화문을 출발해 종로,을지로를 거쳐 잠실벌에 이르는 1백5리길을 향해 쏟아져 나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영하 7도의 이른 아침 찬 공기도 참가 선수들이 토해내는 뜨거운 입김에 녹아 버렸다.
문득 지난 가을 열린 춘천마라톤에서 영화 '말아톤'을 촬영하는 것을 보면서 같이 뛰었던 생각이 떠올랐다.
아마 나도 영화의 한 장면에 찍혔겠지만 아직도 그 영화를 보지 않았다.
내 나이 60이 된 기념으로 오늘 이렇게 건강한 사람들과 달리는 내 '말아톤'의 감동과 기쁨을 먼저 맛본 뒤에 그 영화를 보고 싶었다.
달리면서 지난 11일 열린 주주총회가 생각났다.
주주들이 투명경영을 위한 이사회 중심 경영을 신뢰해 준 것이 너무 감사하다고 생각하며 뛰다 보니 어느덧 잠실대교 위 20km 지점을 2시간5분 만에 지났다.
풀코스를 8번째 뛰고 있지만 마라톤은 콩 심은 데 콩 나듯 심은 대로 거두는 정직한 운동이다.
대회를 앞두고 적어도 2달동안은 매월 2백km 이상을 연습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새벽과 늦은 밤 시간을 짬짬이 이용,처삼촌 산소 벌초하듯 부실하게 준비했기에 만족할 만한 기록이었다.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건강 조심하라고 말리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더 많은 연습을 했다.
국내외 출장 때도 운동화와 운동복은 빼놓지 않고 챙겼다.
드디어 마(魔)의 30km대 구간.육체의 고통이 정신의 포기를 줄기차게 유혹하는 자신과의 싸움 속에서 이를 악물고 천근만근의 다리를 끌고 갔다.
지나온 30km의 자랑스러운 기억은 어디 가고 다가오는 1km가 왜 그렇게도 멀어 보이던지.
인생도 사업도 어려운 때가 있다.
그러나 밤이 깊으면 새벽은 가까운 법.고통과 인내 속에서 어느덧 잠실운동장이 어슴프레 눈에 들어오고,연도에 늘어선 많은 사람의 응원 함성 속에서 마지막 힘을 쏟았다.
등에 멘 6천여명의 불우이웃 돕기 후원인들의 이름이 내 의지를 더 강하게 했다.
마침내 4시간3분42초 만에 42.195km의 결승점을 밟았다.
후반 22km를 1시간58분에 달렸다.
2년 만에 단축된 기록이 믿기지 않았다.
이때의 환희와 만족과 자부심을 위해 지난 2개월동안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노력이 아니었다.
마산 3·15 마라톤 동호회원들이 35km 후반부터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같이 뛰면서 성원해 준 덕분이다.
세상의 모든 결과는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새삼 느꼈다.
정말 고마웠다.
이제 끝났다.그러나 다시 도전하고 싶다.마라톤은 준비하고 실천한 만큼 거두는 인생과 닮은 경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