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나이 70을 넘겼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파릇파릇한 잔디가 겨울땅을 뚫고 솟아나는 것을 보면 아직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요. 제게 옷 만드는 일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입니다." 한국 패션역사의 산증인이자 패션계의 대모로 불리는 디자이너 진태옥씨(71)가 오는 24일 자신의 40년 패션 인생을 재조명한 작품집 'JINTEOK'을 출간한다. 19일 서울 청담동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작품집 출간은 진태옥 패션인생의 끝이 아닌 시작"이라며 일에 대한 강한 의욕을 보였다. 진씨는 지난 98년 영국 페이든사가 발행한 '더 패션 북'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20세기에 손꼽히는 세계적 디자이너'로 뽑힐 정도로 패션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디자이너가 된 계기요? 결혼한 후 평범한 주부로 생활하던 어느날 나 자신의 존재감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1965년 이화여대 앞에 '디쉐네'라는 작은 의상실을 열며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선 그는 70∼80년대 모든 여성들이 선망하는 '프랑소와즈' 브랜드로 대히트를 쳤다. 90년대엔 한국 최초의 패션컬렉션인 'SFAA 컬렉션'을 만들었고 프랑스 파리컬렉션에 수차례 참가,한국패션의 위상을 드높이기도 했다. 40년간 이어온 디자인의 테마에 대해 묻자 "지극히 평범한 흰색 와이셔츠"라는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여고시절 사촌오빠 방 창문으로 오후 햇살이 쏟아지고 그 곳에 걸려있던 와이셔츠 실루엣에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진씨는 요즘도 20∼30대 못지 않은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창작의 샘이 메마르지 않는 비결에 대해 그는 "창조주께서 바느질 한땀 한땀에 매달리며 '땀수 인생'을 사는 진태옥에게 '평범한 것'들을 눈여겨 볼 수 있는 재능을 주신 덕택"이라며 겸손해 했다. 진씨는 패션 아트북 출간을 기념해 오는 24일부터 3일간 서울 압구정동 '태홈'에서 작품 40여점을 설치미술식으로 선보이는 '비욘드 네이처(Beyond Nature)' 작품 전시회를 연다. 이방실 기자 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