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컴퓨터 보안업체 안철수연구소의 설립자이자 CEO인 안철수 사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이 업계에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이다. 안철수연구소는 지난해 순수 패키지 소프트웨어 업체로는 최초로 1백억원대의 순이익을 기록했다고 한다. 안 사장이 10년 전인 1995년 직원 3명과 함께 설립한 이 회사는 직원 3백여명,국내 보안시장 점유율 65%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괄목할 만한 성과다. 안 사장 말대로 벤처기업이 10년간 생존할 확률은 0.1%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니 모두가 그의 행동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안 사장은 왜 CEO를 그만둔 걸까. 필자는 그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른다. 다만 투명한 이사회 중심으로 1백년 넘게 생존하는 기업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발언에서 그가 기업의 선진적 지배구조에도 남다른 관심이 있음을 느낀다. 이는 CEO 사퇴의 공식적 이유로 밝힌,아직 끝나지 않은 공부에 대한 미련 때문이란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그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창업해 회사를 꾸려가는지 공부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기술 기업가정신(technology entrepreneurship)'에 관심이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그 자신이 바로 그런 케이스이고 보면 기대가 크다. 그런데 그냥 기업가정신도 아니고 '기술' 기업가정신이라고 한 것이 단지 한 기업,한 CEO 차원의 얘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미래의 과제를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경제학자 슘페터는 자본주의 경제의 성장동력으로 창조적 파괴를 말하며 기업가정신을 강조했다. 그러나 사실 주류경제학에서는 기업가정신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크게 주목하지 않았었다. 여기에는 기업가정신을 계량화하기 어렵다는 이유도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기업가정신을 제쳐두고 경제성장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경제학자들도 느꼈던지 이것을 계량화하는 연구들이 시작됐다. 그 결과 기업가정신이 활발할수록 경제성장도 높다는 강한 양(+)의 상관관계가 밝혀졌다. 이런 것까지 굳이 계량적으로 증명돼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기업가정신과 경제성장 사이의 보다 진전된 함수관계 연구들이 나온 것이다. 일단의 외국 경제학자들은 기업가정신과 경제성장간 '비(非)선형관계'가 있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말하자면 경제성장이 진행됨에 따라 요구되는 기업가정신도 달라진다는 얘기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국민소득 2만달러까지는 규모와 범위(scale and scope)의 효과가 중요한 반면 그 이상을 넘어가는 선진국에서는 벤처 등 기술 창업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지금 우리는 국민소득 2만달러를 말하고 있다. 이 목표는 대기업의 기업가정신을 잘 활용하면 달성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기술 벤처 등 이른바 기술 기업가정신이 받쳐주지 못하면 그 이상을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이란 얘기가 된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설득력 있어 보이지 않는가. 혹자는 2만달러를 꿈꾸는 상황에서 벌써 그 이상을 말하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때가 되면 기다렸다는 듯 기술 기업가정신이 발현되리라는 보장은 절대 없다.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오늘의 성장 동력에 정주영 이병철씨 같은 기업가정신이 있었듯 미래 성장동력을 이끌 기술 기업가정신을 기대하는 이유다. 안현실 논설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