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낳은 세계적 지휘자 정명훈(52) 씨가 서울시교향악단의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고국에 오게 됐다. 서울시는 22일 시청 3층 태평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씨를 새 출범하는 재단법인 서울시향의 지휘자로 영입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날 참석한 정씨는 "우리나라 오케스트라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오래 전부터 갖고 있던 꿈"이라며 "서울시향이 어느날 갑자기 굉장한 수준으로 발전하리란 기대보다는 차곡차곡 기초를 다지는 일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교향악단이 발전하는 데 지휘자 한 사람의 노력으로는 절대 안 된다"면서 "콘서트홀, 사무조직 등 모든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하며, 그런 점에서 서울시의 전폭적인 지원 약속에 감사한다"고도 밝혔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교향악단은 한 나라, 도시의 문화수준을 가늠하는 상징으로,이제 우리에게도 서울, 한국을 대표하는 악단이 필요하다"며 "정씨 영입과 함께 시향 단원들도 음악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 지원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현재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 도쿄 필하모닉 특별 예술고문 등으로 활동 중인 정씨는 1960년 서울시향 소년소녀협주회 협연으로 시향과첫 인연을 맺은 후 1971년과 95년, 96년에도 시향을 객원지휘한 바 있다. 우선 올해 1년 간 서울시향의 음악고문으로 활동한 후 내년부터 2008년까지 정식 음악감독을 맡을 예정이다. 오는 7월까지 국내외 연주자를 대상으로 하는 오디션을 거쳐 117명의 교향악단을 새롭게 구성할 계획이다. 시향 전 단원을 대상으로 한 오디션은 1957년 시향 창단 후 처음이다. 다음은 정씨와 일문일답. --취임 소감은. ▲오랜 기간 외국에서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았다. 이제 어느 정도 고국을 위해 책임을 맡을 때가 된 것 같다. 우리나라 오케스트라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갖고 있던 꿈이었지만 늘 타이밍과 여건이 맞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서울시의 제안은 고국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자신감이 들게 할 만큼 확실했다. 전용 콘서트홀 건립 등 생각하지 못했던 조건들도 마련돼 감사하게 생각한다. 20년 전 88올림픽 준비 당시 정부로부터 '세계적 오케스트라를 만들려면 어느정도의 시간이 걸리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땐 '20년은 걸릴 것'이라고 대답했는데 지금처럼 모든 여건이 잘 뒷받침된다면 훨씬 짧아질 수 있을 것 같다. 전용 콘서트홀이 완공될 무렵이면 굉장히 좋은 오케스트라가 돼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 책임과 역할은 서울시향을 갑자기 굉장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보다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오케스트라 발전을 위한 모든 기초를 단단히 다지는 것이다. --먼저 1년 간 음악감독이 아닌 고문을 맡는 배경은. ▲외국에선 2-3년 전에 지휘자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우리나라는 뭐든지 좀 빨리 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 역시 (계약 협상이 급하게 진행됐으므로) 스케줄상 올해엔 완벽한 책임은 못 맡을 것 같아 우선 음악고문으로 활동하기로 했다. --단원 오디션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지휘자의 일평생 역할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바로 오디션이다. 오디션 자체도 힘들지만 정말 좋은 단원을 찾는게 쉽지 않다. 파리 오페라 바스티유시절 1천 명의 성악가를 직접 오디션했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은 단 한 명에 불과했다. 음악감독으로 있는 동안 오디션은 계속할 것이다. 친분 관계 등도 소용없고 오로지 내 귀로만 판단할 것이다. 좋은 오케스트라가 되려면 첫째, 단원 개개인의 실력이 뛰어나야 하고, 둘째 이들을 잘 훈련할 수 있는 좋은 지휘자가 있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이들을 지원할 여건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 세가지가 꾸준히 유지된다면 좋은 오케스트라는 만들어진다고 확신한다. --음악감독 취임 후 1년에 얼마간 국내에 체류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로마(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에 있을 땐 1년에 최소 10주 정도 머물렀다. 한국에서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이보다 훨씬 더 되도록 노력하겠다. --향후 전용 콘서트홀(오페라하우스)이 건립되면 이 홀을 운영하는 책임 역할도맡게 되는 것인지. ▲오페라는 굉장히 좋아하지만 오페라하우스 안에서 일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음악감독으로 있을 때도 음악 외적인 일들이 너무 많아고생했다. --고국을 위해 일하고 싶은 또다른 이유가 있다면. ▲20년 간 미국에서, 25년 간 유럽에서 살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내 스스로 100%한국인이란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수록 고국에 대한 책임을 더욱 느끼고 있다. 서울시향을 맡은 것도 큰 성공을 이루기 위해, 계산된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할 수 있는 만큼 경험을 살려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시향을 어떤 색깔을 가진 교향악단으로 키울 것인지. ▲한국인들은 음악적 재능도 뛰어나지만 감정이 굉장히 풍부하다. 일본 음악인들의 경우 준비성이 굉장히 철저하고 앙상블이 훌륭하나 뜨거운 감정이 부족한 면이있다. 반대로 우린 감정은 뜨겁지만 앙상블, 준비성은 좀 부족하다. 이 부족함을 메우고 한국인 특유의 뜨거운 감정이 살아 있는 교향악단을 만들고싶다. (서울=연합뉴스) 이윤영 기자 y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