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왜 강한가.' 도쿄에서 만난 경제인들은 한류열풍만큼이나 삼성전자의 성공스토리에 큰 관심을 표명했다. 삼성은 요즘 일본 산업계의 최대 화두인 듯하다. 물론 일본인들은 나름대로 해답을 갖고 있다. 다소 불안정하지만 다이내믹한 한국문화가 오늘날의 삼성전자를 가능케 했다는 분석이 그것이다. 후카가와 유키코 도쿄대 교수는 목표를 향한 스피드와 집중력을 한국인의 최대 강점으로 꼽았다. 그는 한국인을 단거리선수,일본인을 장거리선수에 비유한다. 한국인은 변화에 즉각 적응하는 장점을 갖고 있는 반면 일본인은 끈질기고 조직적이란 얘기다. 세토 유조 아사히맥주 상담역도 비슷한 해석을 내놓았다. 그는 "한국 기업인은 적극적이고 공격적이라 배울 점이 많다"면서도 "한국인들이 일본인만큼 치밀한 감각이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단거리선수와 장거리선수.도쿄 중심가에 자리한 대표적 관광사찰인 센소지에 들어서면 일본 엘리트들의 이같은 분석에 납득이 간다. 입구에 즐비하게 늘어선 전병 등의 전통음식을 파는 조그만 가게들은 보기와 달리 1백년 전통을 자랑한다. 일본인들은 장인정신의 상징이라며 상당한 자부심을 느낀다. 교토 시마즈제작소의 만년 주임이던 다나카 고이치가 노벨화학상을 탄 것도 마찬가지다. 화학에 대한 지식도 별로 없던 학사 출신인 그가 20여년간 한우물을 판 결과였기 때문이다. 일본의 독도정책은 장거리선수의 결정체다. 기자가 일본을 방문한 기간 중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제정했다. 한반도 전역이 분노로 들끓었던 그 순간 일본인들은 "왜 한국인들이 그렇게 화를 내는가"라고 반문했다. 한국에서 발생한 '분신 시위'를 공격적 민족성으로 규정하며 감정적 대응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충고를 서슴지 않았다. 가해자와 피해자간 역사 인식을 둘러싼 차이일 수도 있지만 일본 국민은 독도문제에 별 관심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다르다. 해마다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국제분쟁화를 끈질기게 시도하는 조직을 갖고 있다. 언젠가는 국제사법재판소에 이 문제를 가져가겠다는 게 그들의 전략이다. 독도에서 밀릴 경우 러시아 및 중국과 벌이는 영토분쟁에서 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인식의 반영인 셈이다. 일본은 장기적 관점에서 숫자를 세는 민족이라고 한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고개를 숙인 채 일본식 경영기법에 미국식을 접목하며 새로운 경제의 틀을 조용히 만들어낸 게 그들이다. "외환시장에 환투기세력이 개입하면 이길 때까지 시장개입을 해야 한다"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게이오대 교수(전 대장성 재무관)의 농담 섞인 발언이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도쿄에 주재하는 삼성맨들은 삼성전자에 대한 일본 기업들의 지나친 관심에 부담을 느낀다는 반응이다. 이제 한국과 일본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아시아채권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동아시아시대에 대비,협력관계도 구축해 나가야 한다. "한류열풍은 한국이 일본에 문화시장을 개방한 덕분"(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대리)이란 주체적인 평가를 내리는 그들과 협조와 경쟁관계를 유지해 나가려면 우리도 장거리선수를 육성해야 하는 것이다. 김영규 증권부장 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