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창조 < ENI 대표이사 cj@enicorp.biz > 우리나라 출산율이 세계 최저라고 한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격세지감이 든다. 출산율이 이토록 낮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에 따른 맞벌이 부부 증가가 주 요인으로 여겨진다. 여성계가 산전후 휴가를 60일에서 90일로 늘리려 애쓴 것도 직장 여성들이 아기를 낳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출산휴가의 증대는 꼭 필요하지만 고려해야 할 점도 있다. 이미 취업한 여성에겐 더없이 좋지만 그렇지 못한 여성에겐 장애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성인력의 활용 없이 국가 발전은 없다고 하고,정보화 시대를 맞아 실력을 갖춘 인재가 많은 데도 상당수 여성이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취업전선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는 게 현실이다. 어렵게 입사한 뒤에도 실력으로 승부하고 승진하려 혼신의 힘을 기울이지만 결혼하고 나면 야간 업무나 출장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업무차 기업인들을 만나다 보면 많은 분이 시험 성적은 여성이 우수한 데도 막상 뽑자면 망설여진다고 말한다. 능력을 발휘할 때쯤이면 결혼해 출산하는데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출산휴가 90일을 줘야 하지만 경비 절감을 위해 꼭 필요한 정예부대로 운영하고자 구조조정도 불사해야 하는 마당에 대체 인력을 투입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정부에서 보조금을 준다지만 대체인력을 투입하기엔 턱 없이 부족한 금액인 만큼 꼼짝 없이 업무 공백이 생긴다. 이러다 보니 여성 채용을 꺼리고 정규직보다 계약직을 채용하려 드는 것이다. 여성을 위한 법이 여성의 정규직 취업을 어렵게 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는 셈이다. 우리 할머니 세대만 해도 출산 전날까지 밭을 매다 아기를 낳는 일이 많았다. 출산 후 일정 기간의 휴식은 필요하지만 꼭 석달을 한꺼번에 써야 하는지에 대해선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누워서 먹고 자는 갓난아기 때보다는 움직이고 의사표시를 할 때 엄마를 필요로 하는 시간이 더 많다. 한꺼번에 90일을 다 쓰도록 하는 것보다는 1∼2년동안 나눠 쓰게 하면 업무 공백도 줄이고 모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자기 자리는 자기가 만든다'는 말이 있다. 여성의 지위 향상도 여성 자신의 노력과 의지가 중요하다. 일정한 권한을 얻기까지 법과 제도가 필요한 게 사실이지만 무작정 강제성을 띤 법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실질적이고 융통성 있는 방안을 강구,운영의 묘를 살렸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