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준 < 딜로이트 컨설팅 파트너 > 이달 초 소니는 이데이 회장이 퇴진하고 후임으로 하워드 스트링거 부회장을 선임하는 경영진 개편을 단행했다. 소니는 도요타와 함께 일본 경제계를 대표하기에 이는 일본사회에 적잖은 충격을 몰고 왔다. 일본의 외국인 CEO로는 닛산 부활의 주역인 카를로스 곤이 있지만 프랑스 기업인 르노에 인수된 닛산과 달리 소니는 주주변동이 없는 상황에서 외국인 CEO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소니는 1950년대 소형 라디오로 수출을 시작한 이후 글로벌 가전시장의 절대강자로 성장했다. 그러나 디지털 가전시장이 성장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PDP·LCD-TV는 샤프와 우리나라 제품에,디지털 카메라는 캐논에 밀리고,애플의 MP3플레이어인 아이팟이 전세계 신세대들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의 시장지배력은 아직도 굳건하지만 상처 투성이 항공모함 소니를 건져올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니 이사회는 외국인의 손에 회사의 운명을 맡기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외국인 CEO를 구원투수로 선택한 결정은 역시 '소니답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소니는 일찍이 협소한 일본시장을 넘어서서 세계시장에 도전하고 성취한 경험이 있고,이 과정에서 축적한 개방성이라는 유전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이라는 뜻에서다. 국적과 혈통을 따지기보다 실력과 성과를 우선하는 개방적 문화가 지금까지 소니를 발전시켜 왔듯이,앞으로의 재도약을 위한 가장 중요한 무형자산이 될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런 개방성은 천년제국 로마의 성장과 발전의 근본적 힘이었다는 점에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있음을 느낀다. 고대 로마가 융성했던 가장 핵심적인 원인으로 타민족에 대한 개방성을 든다. 아테네인이 생각하는 시민이 '피'라면,로마인이 생각하는 시민은 '뜻을 같이 하는 자'였다. 아테네에서는 부모가 모두 아테네 출신이어야 시민권을 부여했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조차도 마케도니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시민권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인종,피부색,출신지가 아니라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체에 기여했는지의 여부가 동포로서 받아들이는 조건이었다. 이런 개방성이 있었기에 로마는 이탈리아에서 프랑스 독일 북아프리카 중동까지 넓은 지역으로 확장되는 국가를 경영할 유능한 지도층을 확보할 수 있었다. 로마제국 토대를 닦은 카이사르도 건국 초기 로마에 패배한 부족의 후손이었고 전성기인 5현제 시대를 연 트라야누스 황제는 로마의 식민지였던 에스파냐 남부 출신이다. 소니의 변화를 보면서 '경영진의 글로벌 시대'가 우리에게도 가까이 왔다는 점과 '글로벌 시장에 절대강자는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다시 절감한다. IMF 이후 우리나라 기업은 '제품과 시장의 글로벌화'라는 측면에서 큰 성과를 거뒀으나 앞으로는 '인적자원의 글로벌화'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또한 소니의 사례는 절대강자를 용납하지 않는 글로벌 시장의 현실을 절감하게 한다. 1990년대 초반 삼성이 소니를 따라잡자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그러나 소니의 하청업체이던 삼성은 오늘날 세계 가전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반면 소니는 삼성전자에서 LCD 패널을 공급받아 TV를 만드는 입장이 돼버렸다. 현대자동차에 기술을 이전해 준 미쓰비시 자동차는 합병됐지만 현대는 세계 자동차 산업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우리기업이 불과 10년 만에 이뤄낸 커다란 성과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오늘의 성취가 내일의 성취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변화가 빠른 21세기 글로벌 경제를 디지털 유목경제라고 말한다. 유목민족 돌궐의 명장 톤유쿠크의 비문은 소니는 물론 우리기업들에 아직도 살아 있는 교훈을 준다.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