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 경제계의 최대 화제는 신생 인터넷기업 라이브도어와 후지TV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적대적 M&A(인수합병) 공방전이다. 다윗과 골리앗,새우와 고래 싸움으로 비유되는 이 공방전은 엎치락뒤치락 하는 게 무협소설처럼 흥미롭다. 승부는 일단 지난주 소프트뱅크를 백기사로 끌어들인 후지TV의 우세로 기울어졌다. 하지만 그동안 반전을 거듭해 왔기 때문에 최종 승리 여부는 좀더 두고 봐야 한다. 이번 공방전은 일본 재계에 커다란 충격을 줬다. 거대 기업군이 조그만 신생 기업에 넘어갈 수 있다는 현실과 후지TV가 마땅한 방어수단을 찾지 못해 쩔쩔매는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았던 것이다. 라이브도어 뒤에 리먼브러더스라는 외국자본이 있다는 뉴스도 개운치 않았다. 급기야 일본 정부는 적대적 M&A의 심각성을 인식,부랴부랴 적대적 M&A를 손쉽게 할 수 없도록 법 개정안을 올해 안에 마련,내년부터 시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우리 정부와 달리 빨리 대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2년간 소버린에 SK그룹이 그토록 시달렸는 데도 정부는 방관자적 자세를 취했었다. 국내 3위의 재벌이 투기자본 손에 넘어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해당기업이 알아서 할 문제라는 입장이었다. 이제 외국 투기자본으로부터 국내기업들의 경영권을 보호하는 문제는 발등의 불이 되고 있다. 외국인들의 상장사 지분이 43%를 넘어서고,삼성전자 현대차 포스코 등 대표적인 기업들은 외국인지분이 절반을 웃돌고 있다. 언제든지 외국 투기자본의 공격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덩치가 커진 헤지펀드들이 수익률제고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어 적대적 M&A나 그린메일(주식을 매집해 대주주에게 비싸게 되파는 행위)의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이에 반해 국내기업들의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수단은 취약하기 짝이 없다. 주로 자사주매입을 통해 경영권 안정을 취해온 면이 적지 않았다. 또 경영권을 위협하는 외국자본의 압력에 굴복해 현금배당을 늘리는 방법으로 공격을 피해왔다. 올해 현금배당이 사상 최초로 10조원을 돌파하고 이중 절반 가까이를 외국인이 가져갔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 다 있는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제도가 우리나라에만 없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유럽 대기업의 경우 3분의 1이 주주들의 의결권 행사에 차등을 두고 있으며 미국도 10% 이상의 기업이 차등의결권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미국은 또 독약조항(poison pill·신주를 대량 발행해 제3자에게 주는 방안)과 황금낙하산제도(golden parachute·퇴직금 액수를 높게 책정해 이사교체를 어렵게 하는 방법) 등을 활용하는 기업이 50%를 넘고 있다. 특히 영국이나 프랑스 등은 공기업 민영화나 중요 기업의 정부 보유주식 매각시 정부가 '황금주'를 보유,자산처분과 경영권변동 합병 등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만 외국 투기자본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는 셈이다. 오죽하면 영국에서 발행되는 파이낸셜타임스가 한국을 '외국계 사모펀드들의 놀이터'라고 비꼬는 기사를 썼을까. 외국 투기자본의 공격에 대등하게 방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기업에 특혜를 주는 게 아니라 글로벌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일이다. 정부는 제도적 장치 미흡으로 희생되는 기업이 나오기 전에 대책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최완수 국제부장 cws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