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국제펀드들 한국자금 운용거절] "검은 돈 포함됐을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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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에 걸맞지 않게 국제 금융시장에서 '자금투명성 후진국'이란 오명(汚名)을 뒤집어쓴 채 자금 해외운용에 차질을 빚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금융당국과 금융회사들로부터 국제 테러자금이나 마약자금 등 '더러운 돈'이 섞여있을 가능성을 의심받으며 펀드 편입을 거부당하는 신세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에 가입하는 게 최선의 해결책이지만 제도적 미비 등을 이유로 그 마저 거부당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 자체의 제도적 문제가 본질적인 이유겠지만,이라크 전쟁 이후 북한의 핵문제가 이슈가 되면서 남한마저 도매금으로 불투명 국가 대접을 받는 것 아니냐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금융계에선 지금과 같은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자산운용 중심의 동북아금융허브는 요원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왕따'
B투신운용회사의 자산운용팀장 C씨는 최근 해외투자용 펀드 오브 펀드를 만든 뒤 외국운용회사와 운용을 위한 컨퍼런스 콜을 가졌다.
하지만 외국 운용사의 법규(compliance) 담당 직원은 "한국은 FATF 회원국이 아니니 규정상 투자자 리스트를 받아야겠다"고 요구했다.
C씨가 "국내 금융실명법상 고객명단을 줄 수 없다"고 하자 "그럼 투자를 받을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투자가 성립된다 하더라도 외국 금융회사가 오히려 고(高)자세다.
감독당국의 심사 통과는 물론,자금출처와 고객의 거래형태를 파악했는지 등을 살펴보며 심지어 국내 금융회사의 확약서까지 요구하기도 한다.
◆FATF가 뭐길래
1989년에 G7(미국 독일 일본 등 선진 7개국) 주도로 설립된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inancial Action Task Force on Money Laundering)는 파리 OECD빌딩에 본부를 두고 있다.
1990년부터 국제 자금세탁 방지를 위한 국제기준을 내놓기 시작했으며 2001년 9·11테러 이후 수위를 대폭 높였다.
지금까지 40개의 자금세탁 방지기준과 9개의 테러자금 국제이동 방지 기준을 내놓았다.
회원국은 31개국이다.
이 가운데 아시아 국가는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 3개국 뿐이다.
한국은 2001년 재정경제부 산하에 금융정보분석원(FIU)을 출범시킨 이후 3차례에 걸쳐 이 기구를 노크했으나 가입에 실패했다.
한국의 자금세탁 방지 규정과 현실이 아직 국제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탓이다.
◆대응 서두르는 정부
황건일 FIU 기획협력팀장은 "한국이 FATF에 가입돼 있지 않아 국제 시장에서 자금이동에 제약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이에 따라 FIU는 올 상반기 중 자금세탁 방지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기 위한 로드맵을 만들기로 했다.
이를 위해 4월중 법무부 검찰 금융감독당국 국세청 관세청 한국은행 등 18개 관련부처·기관이 참가하는 실무회의를 열기로 했다.
FIU는 로드맵에 지난 1월17일 공포된 개정 특정금융거래보고법의 확대 시행을 위한 세부대책을 구체적으로 담기로 했다.
특히 금융회사가 신규 계좌를 개설할 때 확인 의무를 강화하고,금융회사 전산망을 재구축해 5천만원 이상 고액현금거래 때 보고를 내년초부터 의무화하도록 하며,카지노 등을 통한 자금세탁을 막는 등의 방안을 포함시키기로 했다.
황 팀장은 이와 관련,"아시아에서 우리보다 제도적 여건이 미비된 국가로 분류되는 중국이나 인도도 FATF 가입이 예정돼 있다"며 "한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단순한 경제·제도적 이유만은 아닐 것"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