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의 맛을 잊지 못하는 어른들이 많다. 먹거리가 그리 흔치 않았던 시절,동치미 국물이나 김치를 곁들여 먹는 고구마는 출출한 겨울 밤의 훌륭한 간식거리였다. 뿐만 아니라 고구마는 이른 봄 보릿고개에 허기진 배를 채우는 구황식품이었다. 고구마 두 세개를 먹으면 배가 든든해 한나절은 끄떡없이 버틸 수 있었기에 서민들은 고구마를 곡식 못지 않게 여겼다. 고구마가 처음 이 땅에 들어오게 된 것도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대용식품으로 그만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 후기 1760년께 통신사로 일본 대마도에 갔던 예조참의 조엄은 마와 같은 모양에 겉이 붉고 속이 흰 고구마의 맛에 반했다. 게다가 척박한 땅에서도 잘 견딘다는 사실에 무릎을 쳤다. 문익점이 목화씨를 몰래 숨겨가지고 들여오듯,조엄도 씨고구마 몇 개를 가져와 대마도와 토질이 비슷한 제주도에 심었다. 그는 '해사일기'라는 기행문에서 "고구마가 조선 팔도에 퍼진다면 굶주리는 백성이 결코 없을 것"이라고 썼다. 이러한 고구마가 최근 들어서는 훌륭한 다이어트식품으로 각광을 받더니,이제는 봄이면 한반도를 괴롭히는 황사를 잡는 '퇴치약'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중국대륙의 사막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황사는 우리 축산농가는 물론 환경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는데,그 타개책으로 건조한 환경에 잘 견디는 고구마에 착안했다는 것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생명공학기술을 이용,사막과 고원에서도 자랄 수 있는 고구마개발을 끝냈다고 한다. 앞으로 시험재배의 과정이 남아있긴 하지만,어쨌든 중국인들에게는 황사를 줄이고 수익성을 높이는 일거양득의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중남미가 원산지인 고구마는 스페인을 통해 필리핀으로 상륙했고 이어 중국을 거쳐 일본에 건너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고구마가 오랜 세월을 지켜내면서 '환경지킴이'로 변신하고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고구마라는 말은 '효행'이라는 뜻을 내포한 일본어 고귀이모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에 와서 고구마가 원래 뜻을 찾아 제대로 진가를 발휘하는 것 같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