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식사중인 이 호텔매니저 선우(이병헌)는 직원으로부터 귀띔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직원들이 이용하는 누추한 통로와 방을 거쳐 고급장식재로 단장된 룸에 들어선다.
그는 행패를 부리는 손님들을 거침없는 폭력으로 제압한다.
조폭 중간보스이기도 한 주인공의 '지위상승'을 보여주는 이 도입부는 지위가 곤두박질하는 종반부와 정확히 대칭을 이룬다.
김지운 감독의 액션 누아르 '달콤한 인생'은 여러 모로 페데리코 펠리니의 동명 걸작영화(1960년)를 연상시킨다.
도입과 결말의 대칭 구조,의미있는 이야기 대신 인상적인 장면 구성과 변화무쌍한 인물들의 행적으로 흥미를 자아내는 양식이 그것이다.
구원의 희망으로 성(聖)과 속(俗)을 넘나들었던 펠리니 작품의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처럼 선우 역의 이병헌도 상승과 추락,화려함과 비천함,삶과 죽음 등 대립적인 상황을 오간다.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선우를 신임했던 조폭 두목은 선우로부터 생명을 위협받는다.
두목의 꾸지람을 받았던 다른 중간보스는 재신임을 얻으며 폭력을 휘둘렀던 조폭들은 매를 맞아 만신창이가 된다.
공간적인 배경도 화려한 실내와 허름한 공사장 등 양 극단을 반복적으로 오간다.
이 같은 구성은 인생이란 한 순간에 역전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인물들이 겪는 변화의 중심에는 거대한 음모가 아니라 사소한 오해가 자리잡고 있다.
김 감독의 전작 '장화,홍련'처럼 주제는 소통불능이다.
선우가 보스의 애인 희수(신민아)에게 잠시 가졌던 '달콤한 꿈'도 결코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희수의 직업은 상류계급을 상징하는 첼리스트이며 신분차는 극복되기 어렵다.
그녀가 두목의 선물을 보고 내뱉는 "유치하다"는 말이 그 단서다.
선우의 액션은 리얼리티와는 무관하다.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도 당당히 살아남는 홍콩 누아르의 액션배우 같다.
선우는 관객들을 흡입하지 못한다.
관객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던 '대부'의 비토 코를레오네와 달리 담대하지 못한 성품 때문일 것이다.
불량 청소년들이 시비를 걸어오는 자동차 장면에서 보인 과잉 대응이나 경쟁세력 두목의 화해 요청을 거부하는 모습에서 선우는 정의롭다기보다는 '용렬한' 인물로 비쳐진다.
그의 불행도 불가항력적 상황의 산물이 아니라 자업자득처럼 느껴진다.
캐릭터의 매력도 그만큼 떨어진다.
4월1일 개봉,18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