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분홍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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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는 흔들리는 버스드'라는 광고문구가 있다.
길과 교통 사정에 따라 흔들리는 버스처럼 그때그때 세상사의 흐름을 고스란히 전하는건 유행가에 그치지 않는다. 모든 유행은 사회의 필요와 개인의 욕구가 뭉뚱그려진 것이라고 하거니와 패션도 마찬가지다.
1,2차 대전을 거치면서 활동하기 좋은 무릎길이 스커트와 저지같은 신축적 소재가 탄생한 것이 그렇고, 반전운동이 한창일 때 히피 스타일이 등장한 것도 그렇다.
경기가 나쁘면 치마는 짧아지고 화장은 화려해진다는 속설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불황으로 인한 우울한 기분을 떨치고 심기일전을 꾀하도록 부추기는 걸까.
올봄 여성 패션이 분홍색을 중심으로 온통 알록달록 아기자기하다. 장식적인 공주패션의 대명사라던 오브제 옷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다.
옷은 물론 구두 가방까지 진달래색 살구색 복숭아색 산호색 등 다채로운 분홍색에 갖가지 장식품이 달린 것 일색이다.
립스틱과 아이섀도 등 색조화장품도 분홍 계통이 휩쓴다.
색만 화사한 게 아니라 디자인도 하늘하늘 나풀나풀한 소재에 주름 리본 등을 곁들인 소녀풍이 대유행이다. 끝만 부풀린 짧은 치마에 볼레로, 만화 캐릭터와 동물 일러스트레이션을 프린트한 티셔츠 등.
분홍색이 뜨고 옷과 소품, 액세서리가 화려해진 데 대핸 해석은 구구하다.
최소한의 디자인을 추구하던 미니멀리즘 대신 맥시멀리즘이 부상한 21세기 패션의 일환이라는 설도 있고, 딱딱한 커리어우먼 이미지에 매달렸던 여성들이 부드러운 이미지의 여성성을 되찾으려 하는 결과라는 설도 있다.
패션의 현실도피적, 위안적 기능을 드러낸다고도 한다. 낭만적이고 소녀같은 차람을 함으로써 힘겨운 일상과 현실의 심각함을 잊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가브리엘 타르드(1843~1904)는 '패션은 사회적 현재'라고 말했다.
사회는 개인들의 모방으로 이뤄지는데 관습과 패션이야말로 그 모방의 두 가지 형태라는 것이다. 분홍색은 누가 뭐래도 생동하는 봄의 색깔이자 부드러움과 다정함을 상징한다. 올봄 거리를 물들이는 분홍색처럼 사람들의 마음 모두 따뜻하고 화사해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