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창 <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jckim@bok.or.kr > 소년시절을 소백산 지류에서 보내서 그런지 나는 산을 좋아한다. 등산 모임도 몇 개 있어 어울려 다니지만 요즈음은 가끔 혼자서 가기도 한다. 어디를 다니다가도 괜찮은 산을 보면 오르고 싶은 충동이 생기기도 한다. 몇 년 전 대원들과 함께 설악산 용아장성(龍芽長城)을 등반했다. 설악산에서도 가장 험하고 장대(壯大)하다는 능선이 용아장성인데,말 그대로 용의 이빨처럼 생긴 스무개의 봉우리로 구성돼 있다. 능선에 올라서면 한쪽에는 가야동 계곡이 있고 건너편에는 공룡능선과 만경대가 준엄하게 뻗쳐 있으며,다른 한쪽 절벽 밑에는 구곡담계곡이 있고 건너편에는 서북능선이 대청봉까지 이어져 있다. 용아장성의 특징은 첫째,위험한 고비가 여러 개 있다는 것이다. 과감하게 뛰면 그리 문제가 없지만 겁을 먹고 망설이면 수십미터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뜀바위,한쪽은 절벽인 바위를 엎드려 기어 가야 하는 개구멍,자일을 단단히 매지 않고는 내려가기 어려운 암벽,이런 것들이 아마추어에겐 엄청난 위협이다. 두번째 특징은 이 험한 등산로에 위험을 줄이거나 예방하기 위해 사람이 설치해 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험하다고 하는 산에 보통 설치해 두는 로프나 못 자국 하나도 없다. 수렴동 산장 쪽이든,봉정암 쪽이든 어느 쪽으로 올라도 일단 첫번째 봉우리에 들어서면 뒤돌아 가는 것이 더욱 어려운 것도 또 하나의 특징이다. 사람이 사는 것도 그렇고 나라 경영도 그렇다. 인생 여정에도 수많은 난관이 있고 위험이 있지만 스스로 위험에 대비할 기능과 체력을 갖추거나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 위험에 처하게 될지 모른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데 누가 대신 안전장치를 매줄 것인가. 한번 출발하면 뒤돌아 갈 수도 없다. 나라경영도 마찬가지다. 세계화·개방화가 급속히 진전되고 정보화로 변화의 속도가 빨라진 환경에서 세계시장은 약육강식이란 정글의 법칙만이 존재한다. 경제에 어디 우방이 있던가. 선진국은 저만치 앞서 달려가고,중국과 인도는 거대한 몸집으로 폭풍을 일으키면서 달려오고 있다. 우물에서 나와 넓은 세계를 보자.우리끼리 때리고 싸울 때가 아니다. 우리가 경쟁해야 할 상대는 64억인구가 있는 지구촌이다. 험한 능선도 우리 힘으로 정복해야 한다. 보호장치가 전혀 없는 고지도 우리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 새로운 도전정신으로 무장하고 세계시장에서 싸워 이겨야 한다. 경쟁력이 없으면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