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반월.시화.서울디지털(옛 구로공단)산업단지. 이곳은 중소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대표적인 수도권 공단이다. 이곳에 서서히 봄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아직 바람은 차지만 화물차가 늘고 공장부지가 속속 팔려나가는 등 경기회복 온기가 감지되고 있다. 본사 새내기 기자들이 이들 지역을 발로 뛰어봤다. "아직 주문이 확 늘어나는 건 없지만 좋아질 것이란 기대감이 무르익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중소기업 사장들 모임에 나가보면 이런 걸 이심전심으로 알 수 있습니다." 경기도 시화공단에서 10년째 옷걸이와 서랍장 등을 생산하는 김성호 현대아트모아 사장(36)의 얘기다. 공단에 입주한 중소기업의 일감이 당장 불어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주변 물동량이 늘어나고 부동산시장이 꿈틀거리는 등 원경(遠景)은 달아오르는 모습이다. 인천 남동공단 내 A주유소의 문점수씨(46)는 "작년말에 비해 화물차 물동량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며 환하게 웃는다. 그는 "이들과는 대부분 외상거래를 하고 있어 당장 현금이 들어오는 건 아니지만 화물차주들이 운송비를 결제받게 되면 우리도 좀 형편이 풀리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지역 업체들에 화장지를 공급하는 화물차 기사 최성달씨(39)도 "3월들어 공장 근처에 차댈 곳이 없어 애를 먹고 있다"고 귀띔한다. 원자재와 완제품을 싣고 공장을 드나드는 화물차가 늘어난 데다 입주기업도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4천개 중소업체가 입주해있는 남동공단에는 지난 2월 한달동안에만 33개사가 새로 들어섰다(한국산업단지공단 경인지역본부 집계). 새로 입주한 업체들은 기계,전기·전자,화학,운송장비업종 등이다. 남동공단에서 지난해 12월 화장품 업체를 창업한 다쏘앤컴퍼니 김철훈 대표(44)는 "공단 내 화장품 제조업체 수가 작년말 약 40개에서 현재 60개로 늘었다"며 "앞으로 경기가 좋아질 것으로 보고 창업했는데 종업원을 현재의 14명에서 조만간 50명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소위 '뜨는' 업종의 경우 경기회복세는 보다 확연하다. 11년째 남동공단에서 인쇄회로기판(PCB)을 생산하고 있는 세일전자의 유성수 경영팀장(43)은 "지난해 20억원 수준이던 월 매출이 올들어 25억원으로 증가했다"며 "최근들어 폭주하는 주문을 맞추려고 하루 24시간 공장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PCB는 컴퓨터나 휴대폰 등 거의 모든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으로 이 업체는 작년부터 '연성(soft) PCB'부문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얼어붙었던 공단지역 부동산도 꿈틀거리고 있다. 남동공단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송병진씨(42)는 "지난해말까지는 공장부지를 살 사람이 없었는데 올들어선 밀려있던 매물까지 거의 팔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고속도로에서 가까운 입지는 평당 2백50만원이상까지 호가가 형성됐다"고 덧붙였다. IT벤처기업이 많이 포진해 있는 구로동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도 봄기운이 감지된다. 중소기업이 주요 고객인 현대택배 구로지점은 이달들어 하루 배달물량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4% 정도 늘었다고 전했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 일체형 컴퓨터를 생산하는 에스비코아 이재준 대표(47)는 "지난해 극심했던 경기침체에서 벗어나 올해는 소비심리가 좀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심리를 반영,중소제조업의 향후 경기를 예측하는 지수들은 호전되고 있다. 기업은행이 2천64개 중소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2·4분기 경기전망 경기실사지수(BSI)는 128을 기록,전분기(73)에 비해 대폭 상승했다. 중소기업청이 산출한 중소제조업 경기국면지수도 1·4분기에는 직전분기에 비해 0.4포인트,2·4분기에는 0.9포인트 각각 올라갈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아직 '장밋빛'전망을 내놓기에는 이르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안산상공회의소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소비심리 회복을 유도하고 있는 상황인 것 같다"며 "중소기업들이 경기회복을 피부로 느끼려면 3∼6개월 정도 더 지켜봐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협중앙회가 조사한 중소제조업체 가동률도 지난 2월 66.9%로 25개월 연속 60%대의 낮은 수준을 기록,정상 조업률인 80%를 크게 밑돌고 있다. 투자심리가 되살아나고 있는 것은 감지되지만 그 온기가 밑바닥까지 전해지는 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문혜정·차기현·안정락·유승호·노경목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