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회의 모순을 사실적 언어로 표현해온 중견작가 정도상씨(45)가 소설집 '모란시장 여자'(창비)를 펴냈다.
작가의 서사적 변모를 엿볼 수 있는 이번 작품집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루하루 먹고 살기에도 버거운 사람들과 자본주의의 쾌락을 마음껏 향유하는 최상류층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비를 이루고 있다.
모란시장에서 개를 잡아 살아가는 여자('개 잡는 여자')나 보험업에 손을 댔다가 가정파탄을 맞은 주부('달빛의 끝')가 전자의 경우라면 아들의 병역비리를 눈감아줄 것을 청탁하는 회사 중역('오늘도 무사히')이나 이권 청탁을 받고 접대를 즐기는 고위층 인사('그토록 긴 세월을')는 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작가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점을 자연스럽게 드러내 보인다.
'달빛의 끝'은 한 여성의 타락과 죽음을 어두운 분위기로 그려낸 단편이다.
윤애는 남편의 벌이가 시원치 않자 보험설계사로 나선다.
고객의 보험료를 돌려막던 윤애는 마침내 카드빚에 몰리고 끝이 없는 타락의 길로 빠진다.
죽음을 결심하고 고향을 찾은 윤애는 그곳에서 우연히 탈주범을 만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본다.
마지막 장면에서 자살한 윤애의 가방을 뒤져 돈을 빼내가는 탈주범의 비정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구름의 서쪽'은 건달들의 폭력으로 맹인이 된 한 젊은이가 사랑과 봉사의 생활로 나아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맹인 안마사 민은 어느날 안마시술소를 빠져나와 작촌 선생에게 침술과 자연의 이치를 배운다.
민은 불쌍한 노인들을 위해 침술로 봉사하게 되고 민의 정성어린 보살핌에 감동을 받은 한 노인의 유언에 따라 안구를 기증받는다.
하지만 민은 어렵게 얻은 행운을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에게 양보한다.
도종환 시인은 "세상의 거름이 된 사람들,불멸의 사랑을 지닌 사람들의 비극적인 삶을 통해 작가는 지금 우리의 혼돈과 방황이 얼마나 엄살인가를 깨닫게 해준다"고 평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