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春來不似春 ‥ 고홍식 <삼성토탈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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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홍식 < 삼성토탈 사장 hs.ko@samsung.com >
꽃샘추위도 이제 한풀 꺾이고 있다.
여느 때 같으면 봄을 알리는 전령들이 이미 중부지방을 지나 북녘 땅으로 넘어갈 채비에 바쁠 시점이다.
국내 경기 침체와 행정도시 건설,과거사 청산,북핵 6자회담,독도문제 등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지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시구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이 말은 중국 한나라 원제 때 오랑캐인 흉노족에게 시집을 간 왕소군(王昭君)이 지은 글에서 유래했다.
왕소군은 서시(西施) 초선(貂蟬) 양귀비(楊貴妃)와 더불어 중국 4대 미인 중 한 사람이다.
원제는 건소(建昭) 원년 전국에 후궁을 모집한다는 조서를 내렸는데 전국 각지에서 선발되어 입궁한 궁녀들은 그 수가 수천명에 이르렀다.
이때 왕소군도 18세의 꽃다운 나이에 후궁으로 선발되었다.
황제는 수천명에 이르는 궁녀를 일일이 파악할 수 없어 화공에게 초상화를 그리도록 했다.
대부분의 궁녀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화공에게 자신의 모습을 예쁘게 그려 달라고 뇌물을 바쳤다.
그러나 집이 가난했던 왕소군은 뇌물을 바치지 못했는데 화공이 이를 괘씸하게 여겨 그녀의 용모를 추하게 그림으로써 황제의 눈에 띄지 못하고 후에 흉노족에게 시집을 가야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왕소군이 흉노로 시집을 가게 되자 원제는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 초상화를 엉터리로 그린 화공을 황제 기만죄로 참수했다.
왕소군은 슬픈 마음으로 따뜻한 봄에 고국산천을 떠났다.
그러나 변방의 봄은 아직 차가웠고 비릿한 음식과 이역의 풍경은 그녀에게 고국의 그리움만 더해 줄 뿐이었다.
이러한 왕소군의 마음을 짐작해 후세의 시인 동방규가 읊은 시 소군원(昭君怨)에 유명한 '춘래불사춘'이란 구절이 있다.
'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으니(胡地無花草),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春來不似春).'
최근 우리 경제는 산업생산이 21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서고 도소매 판매도 8개월 연속 줄고 있어 뚜렷한 경기 회복 지표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내수 관련 지표들이 호조를 보이는 등 전반적인 경기 회복이 진행 중이란 진단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갑자기 몰아 닥친 꽃샘추위 탓인지 우리경제의 봄은 멀게만 느껴진다.
무릇 기업에 몸담고 있는 필자도 고유가·원자재·환율 등 3중고가 겹쳐 '춘래불사춘'의 심정이지만,이제 꽃샘추위도 물러갔고 하루빨리 내수경기가 회복돼 모두가 활짝 편 가슴으로 따사로운 봄을 맞았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