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의 회생은 그 자체로 미스터리다.


유동성위기가 불거진 지난 2000년 이 회사의 총 부채는 무려 11조6천4백억원.


이 때부터 지난 2003년까지 발생한 누적 경상손실은 12조5천4백억원에 달했다.


지난 2002년 4월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러지와의 매각협상이 결렬되자 사람들은 "이제 하이닉스는 끝났다"고 말했다.


그랬던 하이닉스가 2004년에 돌연 2조2백40억원(해외법인 포함)의 영업이익을 내며 부활하자 세계 반도체업계는 경악했다.


지난해 가을 삼성전자를 잠깐 방문했던 HP의 칼리 피오리나 전 회장은 "하이닉스가 분기별로 5억달러의 이익을 내고 있다는 얘기가 사실이냐"고 물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사이버 팹을 아십니까'


하이닉스는 경기 이천과 충북 청주공장에 모두 5개의 팹(반도체 생산라인)을 가지고 있다.


5개의 팹을 통해 지난해 5조9천5백억원의 매출을 올린 점을 감안하면 팹당 매출은 1조2천억원 정도인 셈이다.


하지만 우의제 사장은 "우리가 갖고 있는 팹은 5개가 아니라 8개"라고 얘기한다.


나머지 3개의 팹은 실물로 존재하지 않는 '사이버 팹'이라는 것이다.


우 사장의 설명을 좀 더 자세하게 들어봤다.


"반도체 라인에는 평균 생산성이라는 것이 있어요.


업계에서 광범위하게 통용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5개 팹이 평균 생산성을 각각 20%씩 늘린다면 신규 팹을 하나 짓는 것과 똑같은 효과가 생깁니다.


사이버 팹을 3개 갖고 있다는 얘기는 팹당 생산성을 60% 신장시켰다는 얘기입니다.


그것도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말이에요."


말은 쉽다.


하지만 반도체업계에서 통상적인 설비효율을 10% 정도 늘리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하이닉스는 투자가 꽁꽁 묶여 있었다.


지난 2002년 삼성전자가 반도체 설비투자에 3조4천4백억원을 투입하는 동안 하이닉스는 고작 2천9백억원의 푼돈(?)을 썼다.


하이닉스의 투자 규모는 그 다음해도 삼성전자의 10% 수준에 그쳤다.


채권단은 신규자금 지원은 아예 꿈도 꾸지 말라고 못박았다.


하이닉스의 재무담당 최고경영자(CFO)인 정형량 부사장은 "모든 직원들이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일했다"며 "결과적으로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불과 1조3천5백억원의 유지·보수비용을 들여 3개의 신규 팹을 건설하는 효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반도체 팹 하나를 짓는데 드는 비용은 1조5천억원 안팎.하이닉스는 낡은 설비로 4조5천억원의 투자비용을 절감한 것이다.


◆고전적인 TPM이 효자


하이닉스의 부활을 이끈 주역은 뜻밖에도 고전적인 생산성 향상운동인 TPM(Total Productive Maintenance)이었다.


우선 장비분야에서는 △스텝활동 △직제모델 활용 △성과지표와의 연계활동 등을 통해 '고장 제로'를 목표로 했다.


공정 분야에서는 장비-공정운영의 표준화와 세팅의 효율 극대화를 통해 '불량률 제로'에 도전했다.


하이닉스는 이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 2003년 9월 'H1-팹'이라는 이름의 첫 사이버팹 기공식을 가졌다.


마침 하이닉스가 2000년 이후 처음으로 분기별 영업흑자를 달성한 때였다.


두번째 사이버 팹 준공식은 그로부터 8개월 후인 2004년 5월에 이뤄졌다.


하이닉스는 점점 탄력을 받아가고 있었다.


엔지니어들은 퇴근 길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제 삼성전자를 따라잡아야 한다"고 전의를 다졌다.


이어 지난해 11월16일,마침내 세번째 사이버 팹 준공식이 열렸던 경기도 이천 본사.우의제 사장은 "단 6개월만에 또 하나의 사이버 팹을 준공하는 기적을 일궈냈다"며 "세계 반도체 1위를 달성하기 위해선 아직도 서너개 이상의 사이버 팹이 필요하다"고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당시 가동을 시작한 3백mm 웨이퍼 라인은 첫 가동에서 90%대의 경이적인 수율을 달성,차세대 첨단 공정경쟁을 앞둔 회사의 앞날을 밝게 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