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유출을 막자며 처벌규정이 강화된 기술유출방지법안 규정 일부가 오히려 애물단지로 변질된 가장 큰 이유는 현실성이 결여된 법개정 탓이다. 지난해 정부측은 법무부와 정보통신부 등 관련부서 협의를 통해 '부정경쟁방지법(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중 벌금형 규정을 대폭 손질했다. 특히 국내외 유출을 막론하고 최고 1억원을 상한선으로 둔 규정은 실효성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이를 '재산상 이득의 2∼10배'로 대폭 강화했다. 그러나 이 규정은 첨단기술유출의 피해액이 천문학적 수준이라는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탁상공론 규정으로,실제 응용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지적이다. 개인인 피고인이 감당할 수 있는 벌금액은 한정돼 있는데도,벌금형은 최소 2배 이상의 범위에서 무조건 형량을 정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판사들이 실효성 있는 형벌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첨단기술유출범죄를 담당하는 한 재판부의 판사는 "30대의 평범한 기술자 한명에게 1백억원이 넘는 벌금액을 선고할 수 없어 업무상 배임죄(1천만원 이하 벌금)를 적용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문제는 실제 법개정 전과 이후의 선고결과에서도 감지된다. 실제로 법개정 전인 지난 2001년과 2003년에는 웹데이터 가공 프로그램 유출이나 미생물발효장치 제조기술이 중국으로 새나간 사건 등 3건에 연루된 산업스파이들에게 모두 수천만원 상당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반면 개정 후에는 벌금형을 받은 산업스파이들이 현재까지 단 한 명도 없는 실정이다. 법이 개정된 작년 7월 이후 법원은 항생제 중간체 제조기술이나 웨이퍼 검사 장비 기술 유출 사건 등 5건에 모두 벌금형 없이 무죄 또는 집행유예형을 선고했다. 한 법조계 인사는 "대다수 피고인들이 연구원 출신이라는 점에서,집행유예형보다는 벌금형에 더 두려움을 느낄 것"이라며 "기술유출 범죄를 예방하자는 게 법취지인 만큼 실효성 있는 규정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 관계자도 "벌금액을 배수로 정하기보다 금액으로 구체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