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 유출'을 막자는 취지로 강화된 '부정경쟁방지법(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의 벌금형 관련조항이 이처럼 '애물단지'로 변질된 가장 큰 이유는 현실성이 결여된 법 개정 탓이다. 지난해 정부는 법무부와 정보통신부 등 관련부서 협의를 통해 부정경쟁방지법 중 처벌 규정을 대폭 손질했다. 예전에는 처벌할 수 없었던 '미수범' 처벌 규정을 신설하고,피해자가 원해야만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규정은 폐지했다. 특히 국내 유출 사건 5천만원,해외유출 1억원이라는 벌금 상한규정이 '경미한 처벌의 원인'이라는 지적에 따라 이를 '재산상 이득의 2∼10배'로 강화했다. 벌금액이 높을수록 유사범죄 예방효과가 클 것이란 판단에서다. 그러나 이 조항은 첨단기술유출의 피해액이 천문학적 수준이라는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탁상공론의 전형이었다. 개인 피고인이 감당할 수 있는 벌금액은 한정돼 있는데도,벌금형은 최소 2배이상의 범위에서 무조건 형량을 정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실제 적용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첨단기술 유출범죄를 담당하는 한 판사는 "법 취지는 좋지만 30대의 평범한 기술자에게 원칙대로 1백억원이 넘는 벌금액을 선고하기란 비현실적"이라며 "고민 끝에 업무상 배임죄(1천만원 이하 벌금)로 공소장 변경을 (검찰에)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6세대 LCD 기술 유출 사건과 LG-팬택계열 간 휴대전화 관련 기술 유출 분쟁 역시 사실상 벌금형을 매기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다. 더 큰 문제는 벌금형을 피하려다 선고된 집행유예나 사회봉사명령,무죄판결 등이 규정 결함으로 인한 '역작용'일 수 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낮은 형량이 선고되는 '불상사'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한 법조계 인사는 "대다수 피고인들이 연구원 출신이라는 점에서,집행유예형보다는 수천만원의 벌금형에 더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라며 "본래 법 개정의 목적이 범죄예방인 만큼 보다 실효성 있는 규정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