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인간이다/ 명백하지도 않고/ 기념비적인 존재도 아니며/ 단순하지도 않고, 오히려 가여운 존재들/ 여기 한 사람 두 사람/ 네 사람 백 사람, 그리고 백만-/ 이 모든 것을 거듭 늘려 번성케 하소서.(결함을 두루 모아 위대함으로 만드소서)' 당신께서는 무한한 인류를 거느리게 되시니…' 전세계 11억 가톨릭 신자의 아버지로 사랑과 존경을 받은 요한 바오로 2세는 젊은 시절 문학청년으로 시와 희곡을 썼다. 위의 글 역시 그의 희곡 '보석가게 앞에서'의 한 대목이다. 폴란드 태생의 교황은 2차 대전중 본래의 학업을 중단하고 지하극단 배우이자 화학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공동체의 삶과 인간에 대한 사랑에 눈떴다고 한다. 그가 지녔던 인류애의 뿌리는 모두 당시의 경험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실제 그는 수많은 글에서 신으로의 귀의 못지 않게 인간의 자유 및 사람 사이 화해와 유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간이야말로 자신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행위의 주체인 만큼 먼저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스스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타인과의 유대를 통해 공동체를 형성한 다음 신에게 영광을 돌리라는 것이다. 희곡 '우리 하느님의 형제'의 한 부분은 그같은 생각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인생은 우리에게 아주 서서히 진실을 드러내준다.조금씩 그러나 끊임없이… 또한 그 진실은 우리 자신 속에 있다. 그 속에서 삶은 조금씩 참다운 진실에 가까워져 간다. 우리 모두는 미약하고 허점투성이인 우리 자신보다 강한 그것을 각자의 가슴 속에 지니고 있다.' 안락사 낙태 동성애 등 사회적 현안에 대해선 지나칠 만큼 보수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선언문이나 회칙 하나도 짙은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작성했다는 그가 남긴 시 '다정한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도시 속의 섬처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마음과 마음 사이에는/ 언제나 벌어진 틈이 있습니다/ 당신은 그 사이로 서서히 들어가야 합니다/ 눈이 색깔을 바라보고/ 귀가 소리에 익숙할 때까지/ 서로 사랑하면서 내면의 공간으로 깊이 들어가십시오… 회피하는 마음, 모진 마음을/ 모두 떨치도록 하십시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