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학 구조개혁, 制度개편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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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필 < 연세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 >
몇년전 모그룹의 회장이 "기업이 바뀌려면 마누라 말고는 모두 바꾼다는 생각을 가져야한다"라고 발표하여 신선한 충격을 준 적이 있다. 그만큼 기업의 변화가 절대절명(絶對絶命)의 화두였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나라 대학의 실정이야말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되는 바로 그 상황이다.
이번에 김진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업무계획에서 밝힌 우리나라 대학 구조개혁 방안은 이런 의미에서 시의적절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대학의 상황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보면 부총리가 계획하고 있는 대학 구조개혁의 실천은 그리 만만치는 않다.
지난 97년의 IMF사태 당시 우리 대학의 현실이 어떠했는가를 되돌아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국가는 물론 모든 기업이 구조조정을 통해 가까스로 위기를 극복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퇴직이다 해고다 하여 국민 모두가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 어느 대학도 구조조정을 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을 뿐더러 어느 대학교수도 정리해고를 당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실로 사회가 모두 뒤집어진 시기에도 대학은 그야말로 무풍지대(無風地帶)였던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대학 구조개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책입안자나 대학 행정 책임자들이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우선 현 제도상으로는 대학 교수들이 구태여 힘들여가며 스스로 개혁을 할 필요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한번 교수직을 맡게 되면 큰 하자가 없는 이상 평생직장이 보장되는데 왜 귀찮은 일을 욕먹어가며 하겠는가?
기업이나 정부기관에서와 같은 진급이나 발탁과 같은 제도가 없는데다 열심히 일하나 안하나 큰 차이 없이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위기인데 왜 고생하며 개혁을 택하겠는가?
자기분야가 가장 중요하며 자기가 가장 똑똑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대학 구성원들에게 외부에서 강제로 개혁을 하라면 이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이겠는가?
지난 수년간 대학의 변화와 개혁이 있을 때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이니 함부로 바꾸면 안된다" 라거나 "신성한 대학에까지 시장원리를 도입하는 것은 천박한 일이다"라고 주장해왔던 사람들이 아직도 각 대학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이들이 쉽게 설득되겠는가?
지난 십수년 간 교육인적자원부가 수차례 대학의 변화와 개혁을 요구했지만 대부분 용두사미식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 당시 정책에 동감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교수들은 대학 내에서 설자리를 잃었다. 그러니 이제 어느 교수가 이 시점에 앞장서서 개혁을 주창하고 실천할 수 있겠는가?
국립대학은 몰라도 사립대학은 특히 학생수야말로 주된 재정적인 수입원이며 교세를 나타내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이번 개혁의 대가로 주어질 정부의 지원이 얼마인지 또 얼마나 지속될지 확인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사립대학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과감히 학생 수를 줄이겠다고 나서겠는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이야말로 대학들이 기업에 못지않은 변화와 개혁을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할 시기라는 점이다.
세계경제 10위권에 걸맞은 국력에 이바지할 수 있는 대학이 되기 위해서는 다시 태어난다는 각오로 개혁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제조건들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첫째, 교육인적자원부 뿐만 아니라 정부의 모든 부처들이 힘을 합해 지속적으로 그리고 단호히 대학 구조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둘째, 대학 내 책임자와 관련자들이 자체 개혁을 원활히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획기적이며 지속가능한 재정적 지원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넷째, 전반적인 학제 개편(연구중심대학 계획, 학부제 추진) 등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개혁이 성공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IMF사태를 계기로 과감한 구조조정을 실시한 기업들이 명실공히 세계적인 기업으로 자매김을 했다는 사실은 대학들에게 큰 교훈이 될 것이다.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개혁을 위해서는 통상적인 개념을 뛰어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