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의 중편소설 '꿈'은 낙산사(洛山寺)가 그 무대다. 승려인 조신은 강릉 태수의 딸 달례에게 꽃을 꺾어준 인연을 맺은 뒤 그녀를 잊지 못한다. 조신은 영험하다는 관음보살상 앞에서 사랑을 이루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홀연히 나타난 달례와 함께 도망을 친다. 행복하게 살던 어느 날 조신은 자신의 살인혐의가 드러나 교수형을 당하게 되는데,그 순간 누군가가 엉덩이를 차는 바람에 눈을 뜨게 된다. 꿈에서 깨어난 조신은 다시 불도에 정진하여 큰스님이 되었다고 한다. 배창호 감독의 영화 '조신의 꿈'도 이 줄거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관음보살상은 국내 사찰로는 맨 처음 낙산사에 모셔졌다. 전해오는 얘기로는 중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만나보기 위해 기도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해 바다에 투신하려 했다. 바로 그때 관음보살이 나타나 지시한 곳이 엊그제까지도 관음보살상이 있던 원통보전(圓通寶殿)이다. 낙산사에는 1천3백여년의 역사만큼이나 유물도 많다. 7층석탑과 동종(銅鐘)은 보물로,홍예문 등은 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의상대에서 보는 동해안 일출은 낙산해수욕장과 더불어 관동팔경의 명승지로 꼽힌다. 이번 산불로 낙산사가 전소하다시피 됐다. 주변은 형편없이 망가졌고 동종은 녹아내렸다.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무엇보다 낙산사는 화마와 악연이 깊은 것 같아 안타깝다. 창건된지 1백여년만에 불에 탔고,몽골 침입 당시, 그리고 임진란 때도 소실됐다. 한국전쟁중에도 어김없이 수난을 겪어 1953년에 다시 중건됐다. 화마가 할퀴고 간 의상대 가는 길목에 세워져 있는 '의상대 해돋이'의 시비가 새삼스럽다. "천지개벽이야/눈이 번쩍 뜨인다/불덩이가 솟는구나/가슴이 용솟음친다/여보게/저것 좀 보아/후끈하지 않은가." 이는 분명 동해에 떠오르는 붉은 해를 보며 법열을 노래했을 것이리라. 조신이 허망한 꿈에서 깨어나 큰스님이 된 것처럼,낙산사의 비운도 꿈으로 끝나 중생을 제도하는 더 큰 도량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