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천자칼럼] 조신의 꿈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이광수의 중편소설 '꿈'은 낙산사(洛山寺)가 그 무대다. 승려인 조신은 강릉 태수의 딸 달례에게 꽃을 꺾어준 인연을 맺은 뒤 그녀를 잊지 못한다. 조신은 영험하다는 관음보살상 앞에서 사랑을 이루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홀연히 나타난 달례와 함께 도망을 친다. 행복하게 살던 어느 날 조신은 자신의 살인혐의가 드러나 교수형을 당하게 되는데,그 순간 누군가가 엉덩이를 차는 바람에 눈을 뜨게 된다. 꿈에서 깨어난 조신은 다시 불도에 정진하여 큰스님이 되었다고 한다. 배창호 감독의 영화 '조신의 꿈'도 이 줄거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관음보살상은 국내 사찰로는 맨 처음 낙산사에 모셔졌다. 전해오는 얘기로는 중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만나보기 위해 기도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해 바다에 투신하려 했다. 바로 그때 관음보살이 나타나 지시한 곳이 엊그제까지도 관음보살상이 있던 원통보전(圓通寶殿)이다. 낙산사에는 1천3백여년의 역사만큼이나 유물도 많다. 7층석탑과 동종(銅鐘)은 보물로,홍예문 등은 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의상대에서 보는 동해안 일출은 낙산해수욕장과 더불어 관동팔경의 명승지로 꼽힌다. 이번 산불로 낙산사가 전소하다시피 됐다. 주변은 형편없이 망가졌고 동종은 녹아내렸다.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무엇보다 낙산사는 화마와 악연이 깊은 것 같아 안타깝다. 창건된지 1백여년만에 불에 탔고,몽골 침입 당시, 그리고 임진란 때도 소실됐다. 한국전쟁중에도 어김없이 수난을 겪어 1953년에 다시 중건됐다. 화마가 할퀴고 간 의상대 가는 길목에 세워져 있는 '의상대 해돋이'의 시비가 새삼스럽다. "천지개벽이야/눈이 번쩍 뜨인다/불덩이가 솟는구나/가슴이 용솟음친다/여보게/저것 좀 보아/후끈하지 않은가." 이는 분명 동해에 떠오르는 붉은 해를 보며 법열을 노래했을 것이리라. 조신이 허망한 꿈에서 깨어나 큰스님이 된 것처럼,낙산사의 비운도 꿈으로 끝나 중생을 제도하는 더 큰 도량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

    ADVERTISEMENT

    1. 1

      [토요칼럼] '후덕죽의 칼'이 주는 교훈

      최근 다시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의 요리 서바이벌 ‘흑백요리사2’에서 가장 시선을 끈 출연자 중 하나는 후덕죽(候德竹) 셰프다. 신라호텔 팔선 출신으로 올해로 57년째 ‘웍질’을 하고 있는 한국 중식계의 산증인이다. 요식업계에선 전무후무한 ‘셰프 출신 그룹 임원’(신라호텔 상무)이라는 타이틀을 단 인물이기도 하다. 잿빛으로 센 머리와 주름진 손등은 오랜 시간을 단련한 증표다.그는 경연 내내 말보단 태도로 ‘어른의 품격’을 보여줬다. 팀 대항전에서 후배 임성근 셰프가 소스 담당을 자처할 때, 팀원들 사이엔 묘한 정적이 흘렀다. 반신반의하는 눈빛 사이로 후 셰프는 짧고 단호하게 말한다. “여기(임 셰프)가 리더해.” 의심을 걷어내고 책임을 건넨 한마디였다.압권은 그다음 장면이다. 임 셰프가 후 셰프의 칼을 허락도 없이 집어 들어 거침없이 마늘을 으깨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요리사에게 칼이란 전쟁터의 총이자 자부심 아닌가. 그럼에도 그의 입에선 호통 대신 격려의 말이 흘러나온다. “(내) 칼을 아주 잘 쓴다!” 거장이 보내준 무한한 신뢰 덕이었을까. 그가 속한 백수저팀은 임 셰프의 소스를 넣은 요리로 대중평가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이 장면이 오래 마음에 남은 이유는 우리 사회의 풍경과 정반대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유튜브 댓글창 등 오늘날의 공론장엔 다른 세대를 향한 날 선 대화만 가득하다. 기성세대는 젊은 층을 ‘MZ’라는 편리한 카테고리로 묶어 ‘이기적이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집단’으로 치부한다. 반면 젊은 층은 나이 든 세대를 ‘꼰대’라고 칭

    2. 2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을 읽는 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우크라이나의 시끄러운 평화 협상 과정보다 중요한 뉴스는 유럽이 향후 2년에 걸쳐 신규 자금 1050억달러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지속 역량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머릿속에서 작동하던 ‘희망의 시간표’를 뒤흔든다.이번주 푸틴 측 약점이 드러났다. 푸틴은 군 지휘관과의 공개 회의에서 전황에 관해 과장된 보고를 들었다. 푸틴의 ‘노쇠한’ 외무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는 푸틴 거처가 우크라이나 드론 91대의 비열한 공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꾸며냈다. 이를 뒷받침할 증거도, 목격자도 없다. 약점 드러낸 푸틴트럼프는 중립적이고, 이해관계 없는 중재자 역할을 하며 그의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무기, 훈련, 전술 정보를 지원하고 있다. 푸틴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미국 무기는 여전히 공급되지만 유럽을 경유해 세탁된다. 트럼프의 정치적 위신은 공식적으로 ‘평화’ 외에 어떤 특정 결과에 걸려 있지 않다. 그는 진정으로 중립화된 우크라이나가 자신이나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사실 트럼프는 여러 가지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저울질하며 방향을 탐색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당장은 실제 평화가 성립되기 어렵다. 푸틴의 계산을 바꿀 ‘몽둥이’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 비판자들이 기다려온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할 수도 있다. 이 전쟁은 결국 ‘트럼프의 전쟁’이 될 것이다. 그는 푸틴과의 확전 경쟁에 나서야 할 것이고, 트럼프가 이길 가능성이 크지만 ‘MAGA(미국을 다시

    3. 3

      [취재수첩] 기술 빼앗긴 기업이 법정서 피해 숨기는 이유

      “기술 유출의 실질 피해자인 기업이 구체적인 피해 내용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는다.”지난달 경남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 재판부는 장보고함-Ⅲ 기술을 대만에 넘긴 전직 해군 중령인 방위산업 기업 대표 A씨에게 징역형을 선고하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A씨는 2019~2020년 옛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기술자를 통해 불법 반출한 도면 등 핵심 기밀을 총 1억1000만달러에 대만에 팔아넘기려 했다.하지만 한화오션은 재판 과정에서 검찰 공소사실에 대해 “잘 모른다” “범죄와 관련 없다” 같은 답변으로 일관했다. 재판부가 “실체 규명에 어려움이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화오션이 법정에서 소극적 태도로 일관해 한국 잠수함의 핵심 기술이 어느 수준까지 해외로 넘어갔는지 실체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방산기업이 과거 기술 유출 의혹 사건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배경에는 ‘방산 기술 보안감점제도’가 있다. 2014년 이 제도를 도입한 정부는 보안사고가 발생한 방산기업의 정부사업 입찰 평가 점수(100점 만점)를 3년간 3점 감점한다. ‘기술을 지키지 못한 책임’에 대한 일종의 벌점이다. 업계에선 “결과는 1점 이내에서 갈린다”며 “‘-3점’은 사실상 입찰 탈락을 의미한다”고 말한다.방산기업과 달리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전지 등 첨단 제조 기업은 범죄가 확인되면 내부 가담자를 즉각 색출하고 수사기관에 적극 협조한다. 세계 2위 수준의 폴리올레핀엘라스토머(POE) 기술을 유출당한 LG화학은 현재 진행 중인 2심 재판부에 “엄정히 처벌해달라”고 촉구하고 있다.유독 방산기업만 기술 유출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