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유로 환율 오르는데 원화만 제자리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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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9시 서울 외환시장.
도쿄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이 1백8엔대로 올라섰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장 초반부터 달러를 사자는 주문이 쏟아졌다.
개장한 지 10여분만에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5원이상 오르며 1천18원선을 훌쩍 넘어섰다.
그러나 반등은 거기까지였다.
환율은 곧바로 조선업체 등 국내 대기업들의 매물을 맞아 1천11원대까지 되밀렸다.
국내 기업들의 이 같은 달러 매물 공세는 지난 달 30일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1천원선 붕괴를 위협받았던 원·달러 환율은 외환시장이 문을 열자마자 금세 1천20원선을 넘어섰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10억달러가 넘는 국내 대기업들의 달러매물이 쏟아져 나왔다.
장중 한때 1천26원40전까지 올랐던 환율은 이날 1천23원선이나마 지켰지만,그 뒤 기업들의 달러 매물공세가 더욱 기승을 부려 원·달러 환율은 이틀 새 15원이상 까먹으며 1천8원선으로 고꾸라졌다.
기업들의 '묻지마식' 외환운용이 국내 외환시장을 흔들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일정 수준에만 도달하면 무조건 보유 달러를 털어내는 '일몰조항(sunset clause)' 방식의 외환운용이 환율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진우 농협선물 금융공학실장은 "주가가 일정수준에 도달하면 자동으로 매도물량을 쏟아내는 프로그램 매매처럼 환율이 1천20원선 언저리에 이르면 무조건 달러를 내다파는 기업들이 많다"고 전했다. "엔·달러환율과 달리 원·달러환율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도식적인 환율운용방침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권택우 스탠다드차타드은행 부장은 "6일 원·달러 환율이 오후 들어 하락한 것도 대우인터내셔널 등 국내 기업의 매도주문때문이었다"며 "최근에는 이 같은 일몰조항식 외환운용이 중소기업에까지 확대되고 있다"고 전했다.
기업들의 이같은 외환운용은 환율이 앞으로 비교적 큰 폭으로 장기간 하락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대부분의 전망기관들은 올해 평균 원·달러 환율이 1천원선 밑으로 떨어질 것(삼성경제연구소의 경우 9백60원)으로 보고 있다.
외환당국이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한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신후식 대우증권 파트장은 "작년 말 외환당국이 그동안의 개입정책을 포기함에 따라 단기간에 환율이 급락하는 과정에서 기업들이 많은 환차손을 입었다"며 "이로 인해 기업들이 외환당국을 믿지 못하고 환율이 오를 때마다 달러를 파는데만 골몰해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미국이 추가적인 금리인상을 예고한 상태여서 앞으로 원화가 강세 기조로 돌아설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들이 추가적인 달러약세를 예단한 채 달러매물 공세를 계속할 경우 또다른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상춘 논설위원·안재석 기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