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高)유가가 간신히 살아나고 있는 국내 경기에 적지않은 부담이 되고 있다. 유가 상승이 길어지면 물가가 오르기 때문에 내수소비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기업들은 제품 생산원가 상승으로 수익성이 그만큼 악화되고 경제성장 둔화가 불가피해진다. 최근의 환율하락이 고유가 충격을 어느정도 완화하고 있으나 환율이 흡수할 수 있는 여력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윤우진 산업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유가 상승이 회복세를 보이는 국내 경기의 흐름을 교란할 가능성이 높다"며 "에너지와 원자재 절약을 위한 정부와 기업의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유가에 취약한 국내 경제구조 유가 상승은 물가 상승을 유발하기 때문에 제조업의 원가상승과 수출산업의 가격경쟁력 약화를 초래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국제원유 가격이 배럴당 10달러 오를 경우 경제성장률이 1.34%포인트 하락하고 무역수지는 80억달러 가량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소비자물가도 1.7%포인트 정도 올라 서민들의 생활고를 가중시킬 것으로 우려했다. 한국은 하루 2백30만배럴의 원유를 사용하는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구조이기 때문에 유가상승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연간 8억배럴 정도의 원유를 수입하므로 배럴당 1달러만 올라도 한해 8억달러 가량의 무역수지 악화요인이 생긴다. 유가상승 여파는 이미 거시 경제지표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제수지동향'에 따르면 지난 2월 경상수지 흑자는 10억7백30만달러로 지난해 3월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올 1월에 기록했던 흑자규모(38억6천만달러)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수출은 비교적 견조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원유가격 상승 등으로 수입액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고유가가 장기화할 경우 올해 5% 성장을 장담할 수 없다"며 "내수회복마저 지연될 때에는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고물가)이라는 악몽을 겪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수출기업에는 쌍둥이 악재 국내 수출기업들은 원화환율 하락세로 몸살을 앓고 있다. 원화강세(환율하락)로 인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수출단가를 인상해야 하지만 대외경쟁력 약화 때문에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다 석유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마저 올라 생산원가가 치솟고 있다. 에너지 비용이 제조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19%(2003년 기준)로 이 중 섬유와 화학업종은 각각 5.17%,3.53%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대기업의 납품단가 인하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중소기업들은 생산비 상승요인을 전가시킬 방법이 없어 쩔쩔 매고 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무역수지가 악화되고 성장률이 하락한다. 기업들의 실적 악화는 증시 침체로 이어져 내수소비가 더욱 침체되는 악순환으로 빠질 수 있다. ◆예전보다 덜한 고유가 충격 최근 들어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50달러에 육박하는 등 유가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으나 과거 '오일 쇼크'에 비해서는 훨씬 타격이 적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환율 하락이 고유가 충격을 어느 정도 상쇄하면서 물가상승을 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0원 떨어질 경우 국내 휘발유가격(공장도 가격기준)은 ℓ당 3원 인하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국내 에너지원이 LPG(액화석유가스) 등으로 다원화되면서 1차 에너지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95년 62.5%에서 지난해 45.6%로 10년 사이에 16.9%포인트 떨어진 것도 고유가 충격을 완화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할 경우 현재의 유가 수준이 우려할 만큼 높은 수준이 아니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최근 "현재의 실질유가 수준은 제2차 석유파동의 정점이었던 지난 80년에 비해 50%수준에 불과하다"고 진단했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그러나 "중국 등의 석유수요 증가와 산유국들의 공급능력 한계 등으로 당분간 큰폭의 유가하락은 기대하기 어렵다"며 "기업과 정부의 장기적인 에너지절약 대책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