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바티칸에서 열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은 평화를 위해 헌신한 그의 업적을 기리는 추모객들의 애도 속에 엄숙하게 진행됐다. 부시 미국 대통령과 함께 이른바 '악의 축'국가 중 하나인 이란 하타미 대통령,이스라엘 및 중동국가 대표들도 자리를 같이 했지만 미움과 갈등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를 가진 수십억명의 지구촌 사람들도 종교의 벽을 뛰어넘는 인류애를 실천했던 고인을 기리며 TV로 생중계된 교황 장례식에 시선을 모았다. ○…추기경단 의장인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이 집전한 이날 장례미사는 지난 2000년 출판된 바티칸의 예배의식 전범에 따라 "주여,영원한 안식을 내리소서"라는 입당송(入堂頌)으로 시작됐다. 이어 교황의 시신이 안치된 편백나무 관이 베드로 대성당 밖으로 운구돼 제단 앞에 놓였다. 라칭거 추기경은 교황이 나치 점령기 폴란드에서 공장 노동자로 일했던 시절부터 가톨릭 수장으로 마감한 최후의 순간까지 생애를 언급하며 '친애하는 고(故) 교황'이라고 지칭했다. 10여 차례의 박수로 간간이 강론을 중단하기도 한 라칭거 추기경은 교황이 부활절 일요일에 마지막으로 신도들에게 축복을 내린 일을 회고하며 목이 메이기도 했다. 그는 교황이 "마지막까지 성직자의 자세를 보였다"며 "특히 마지막 몇 달 동안 고통 속에서도 신과 신도들을 위해 헌신했다"고 칭송했다. 장례미사가 끝난 후 수십만명의 추모객들은 '산토(성인이라는 뜻)'를 연호했다. ○…장례미사 후 고위 성직자들은 관을 메고 성 베드로 대성당의 계단을 내려와 바티칸의 지하 석굴로 향했다. 관은 교황과 교황청의 봉인이 찍힌 붉은 띠로 둘러져 닫혀진 뒤 아연으로 만들어진 두번째 관과 호두나무로 만들어진 세번째 관에 차례로 넣어졌으며 고국 폴란드에서 가져온 흙이 관 위에 덮여졌다. ○…침낭이나 담요에 의지해 밤을 지샌 20대 젊은이들을 포함한 수백만 추모객들은 베드로 광장과 비아 델라 콘실리아지오네 도로에 앉아 교황의 마지막 길을 지켜봤다. 교황의 시신이 담긴 목관이 조문객 사이를 지나자 경건한 박수가 울려펴졌고 때맞춰 바람이 불어 폴란드 국기 수백개가 흩날렸다. 이날 미사는 죽음이 아닌 부활을 주제로 성대하게 치러졌으며,슬픔이 아닌 희망으로 가득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교황의 관은 십자가와 성모 마리아를 뜻하는 'M'자가 새겨진 평범한 목관이어서 고인의 소박한 면모를 엿보게 했다. 교황의 시신이 안치될 성 베드로 성당 지하 납골당도 이전 교황들의 묘가 화려하게 치장됐던 것과 대조적으로 꾸밈없는 대리석판으로 만들어졌다. 대리석판에는 교황의 라틴어 이름인 '요하네스 파울루스 2세'와 생존연도인 '1920∼2005'만 새겨졌다. ○…이날 로마는 거주 인구보다 더 많은 추모객이 몰려들어 큰 혼잡을 빚었다. 당국은 원활한 장례 진행을 위해 오전 2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반 승용차와 트럭의 로마 시내 통행을 금지하는 전례없는 조치를 취했다. 이탈리아 군경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8km 반경 로마 상공에 비행금지 구역을 설정했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대공 미사일,저격수,폭발물 탐지팀도 동원됐다. 바티칸 앞을 흐르는 테베레 강에는 해군 순찰 경비정이 배치됐고 8천여명의 보안 요원과 2천여명의 사복경찰이 장례식장 안팎에서 순찰 활동을 벌였다. 김남국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