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10일 "환율이 더 떨어져서는 안 된다"고 공식 언급한 것은 원화의 '나홀로 강세'(환율 하락) 고리를 끊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국내 외환시장에 전달한 것으로 분석된다. 외환시장의 최대 큰손인 한은의 수장이 외환운용 기본전략을 직설화법으로 밝힌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박 총재는 특히 보유외환 다변화정책을 펴지 않겠다고 강조했고,내달에는 세계에서 달러화를 가장 많이 보유한 일본·중국의 중앙은행 총재들과 국내에서 첫 회동도 갖기로 해 주목을 끈다. '실탄 부족'으로 운신이 어려워진 재정경제부를 대신해 한은이 환율방어의 총대를 메고,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하기 위해 나선 셈이다. 당장 11일 외환시장의 반응이 궁금해진다. ○환율 방어,한은이 총대 멨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미주개발은행(IDB) 총회에 참석 중인 박 총재가 이날 기자들에게 밝힌 내용은 외환시장 참가자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로 해석된다. 박 총재의 어법대로라면 "시장은 환율 상승에 대비하라"는 의미인 셈이다. 박 총재의 이 같은 의지가 한은의 외환운용 전략에 고스란히 반영될 경우 원·달러 환율 흐름은 상당한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박 총재가 이례적으로 환율 관련 강성발언을 내놓은 것은 최근 달러화가 세계적으로 강세로 돌아섰는데도 원·달러 환율만 제자리를 맴도는 왜곡된 시장흐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때 1백3엔까지 떨어졌던 엔·달러 환율이 1백8엔대까지 오르는 동안 원·달러 환율은 1천10원 안팎에서 이렇다 할 반등이 없었다. 주요국 통화 중 원화만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박 총재는 이와 관련,"올 들어 엔화와 유로화는 5% 정도 절하됐는데 원화는 2%나 절상돼 원화환율이 지나치게 많이 떨어졌다"고 강조했다. ○달러 매도 일변도인 국내기업이 타깃 원화가 '나홀로 강세'를 보이는 데는 요즘 들어 국내 요인이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게 한은의 시각이다. 수출기업들은 환율이 일정수준에 오르면 현물·선물을 가리지 않고 달러를 내다팔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 총재의 발언은 국내 수출기업들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외환당국이 국제 흐름과 괴리된 원화 강세를 저지하기 위해 적극 나설 것인 만큼 기업들이 무조건 달러를 매도할 경우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실제 국내 기업들과 직접적인 접촉을 피했던 한은이 최근 매일 대기업 외환담당자들과 전화 통화로 시장상황을 설명하고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치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자는 "기업들과의 대화에서 달러 강세가 최소한 몇 달은 지속될 것이며 당장 달러를 내다파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나 시장입장에서 모두 좋지 않다는 점을 설명하고 공감대를 확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역BOK 쇼크 나타날까 박 총재가 그동안 상식처럼 돼 있던 '달러자산에 편중된 외환보유액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한은의 기본 입장을 전면 부인한 점도 주목을 끈다. 한때 세계적인 달러 약세를 몰고온 'BOK(한은) 쇼크'가 향후 국내 시장에서 '역BOK 쇼크'로 나타날 가능성이 점쳐지는 대목이다. 물론 보유외환 다변화정책을 펴지 않겠다는 언급은 실제 운용과는 다른 '립서비스'일 가능성도 있지만,당장 환율문제만으로 시야를 좁혀보면 한은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결국 현 시점에서 달러가치가 더 떨어져서는 안 되며 한은은 원·달러 환율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는 어떠한 전략도 사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