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규 < 한국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 > 독도와 역사교과서 문제로 연일 우리를 자극하고 있는 일본을 보고 있노라면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일본 국민 상당수가 역사와 지리적 영유권에 대해 뒤틀린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답답한 일이요, 동아시아의 장래를 위해서 한국과 일본이 손잡고 함께 헤쳐나가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한 걸음 내딛기 힘든 현실이 안타깝다. 국가간 협력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일 수는 없다. 사람이 평생동산 진정한 친구 한명 만들기도 어렵다는데, 온갖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국가간의 협력과 친선이야말로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전지구적인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다른 나라와의 협력 없이는 안되는 것 또한 우리의 현실이다. 마침 독일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에서는 한ㆍ독 정상회담에 맞추어 양국간 산업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테크노 캐러반’이 열리고 있다. 세계경제의 3대축이자 기술강국인 독일은 분명 우리에게 호감을 주는 협력대상이다. 일본과 비교해 자주 언급되는 나라라는 점에서도 우리의 관심을 끈다. 한 나라의 속담에는 민족의 성격과 가치관이 녹아 있다. 독일인들의 속담을 조사한 바에 의하면 그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는 ‘노력’, ‘신뢰’, 그리고 ‘내실’이라고 한다. 부지런함과 노력을 중시하는 독일인의 가치관은 “아침시간은 입 속의 금이다”라는 속담에 잘 나타나 있다. ‘라인강의 기적’은 하늘이 준 천연자원도, 공산권 확장을 막기 위한 미국의 지원도 아닌 바로 국민들의 노력과 근면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 우리 역시 근면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고 있으며 ‘한강의 기적’을 통해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타인에게 무덤을 파는 자는 스스로 거기에 빠진다'와 같은 속담에서는 신뢰를 중요시하는 독일인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그들은 국가를 전쟁으로 몰고 간 자들과 이민족을 학대한 자들에 대한 철저한 단죄와 자기반성으로 국제사회의 신뢰와 협력을 이끌어냈고, 이 역시 지금의 독일을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독일은 우리가 어려울 때마다 믿고 도와준 나라다. 경제개발 자금에 목말라하던 시절 독일은 맨먼저 우리에게 정부개발원조(ODA)를 제공했다. 1990년대말 외환위기 때도 독일의 유수기업들이 한국의 잠재력을 믿고 적극적으로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다른 외국인투자자들이 그 뒤를 따르게 했다. 독일인들은 노력하는 것도, 믿음을 가지는 것도 내실이 함께해야 한다고 여긴다. '빛나는 것이라고 모두 금은 아니다'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독일은 세계 최대 자동차 생산국은 아니지만, 품질이 가장 좋은 차를 만들고 있다. 산업의 기반인 기계, 부품 및 소재 분야에서 세계최고 수준을 자랑하며 외화를 벌어들이는 그들의 강점은 실용주의 정신이 낳은 것이다. 근면함에서 한국과 독일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상호간의 신뢰 또한 든든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전개될 양국의 협력은 어떻게 서로의 내실을 챙겨주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독일과의 협력을 통해 기계, 부품 및 소재 분야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지난해만도 2백44억달러를 기록한 일본과의 무역적자에서 알 수 있듯 우리의 무역구조 시정을 위해서라도 이 분야에서 독일과의 협력이 절실하다. 5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독일의 기초과학이 한국의 과학기술 기반을 다지는 데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한국과 독일은 여러 면에서 상호이익에 바탕을 둔 친구이자 협력자가 될 수 있는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남은 과제는 두 나라가 협력내용을 더욱 구체화하고 이것을 산업현장에서 실현시키는 일이다. 한국과 독일의 협력을 ‘행사’가 아닌 ‘일상사’로 만듦으로써 양국이 함께 전후분단을 극복하고 경제강국이 된 유럽과 아시아의 모범사례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