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말 현대건설은 카타르 라스라판 가스 프로젝트 수주를 낙관하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2006년까지 카타르 북부 라스라판에 초대형 가스처리시설을 건설,파이프라인을 통해 아랍에미리트에 공급하는 것.단일 가스 플랜트로는 사상 최대 규모였다. 그러나 사업권은 현대건설보다 1억8천만달러나 낮은 16억2천만달러를 제시한 일본 JGC에 돌아갔다. 충격이었다. 오일달러를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는 중동 각국에서 수주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제3의 중동 붐'이 일면서 건설 종합상사 등 국내 업체들도 중동에 '올인'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올해 해외 수주목표인 20억달러를 대부분 중동에서 달성해야 할 정도.국내 업체들은 미국 유럽 일본 등의 거대 건설업체들과 때론 경쟁하고,때론 협력하며 수주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SOC발주 3년내 3천억달러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아랍에미리트 오만 리비아 카타르 등이 향후 3년간 쏟아낼 건설·플랜트 물량은 3천억달러에 이른다(이선인 KOTRA 중동아프리카지역본부장).이들 국가는 '포스트 고유가 시대'에 대비,석유화학 및 가스 플랜트는 물론 항만 공항 리조트 건설을 통한 산업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담수발전 철도 석유화학 등의 프로젝트에 2백40억달러 규모의 발주 물량을 갖고 있다. 오만은 2000년 이전만 해도 SOC 시장 규모가 10억달러에 불과했지만 최근 가스생산과 석유화학시설 확충에 열을 올리면서 향후 3년내 85억달러의 플랜트를 발주할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아시안게임을 개최하는 카타르도 도하공항 확장(20억달러),라스라판항 확장(18억달러) 등 대형 프로젝트를 계획 중이다. 특히 도하공항 프로젝트 원청업체인 벡텔은 22개 패키지 공사에 대한 하청물량을 내놓아 국내 업체들의 참여도 가능할 전망이다. 카타르와 이란은 페르시아만의 초대형 가스전 생산을 위해 경쟁적으로 처리시설 구축에 나서고 있다. 연간 1천4백만t의 액화천연가스(LNG)를 생산하는 카타르는 라스라판 처리시설을 통해 내년부터 3백년간 해마다 3천만t의 가스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압둘 마타이 두바이 상공회의소 사무총장은 "영원히 원유를 팔아 먹고 살 수는 없다는 인식이 중동 국가에 팽배해 있다"면서 "오일달러를 사회간접시설에 쏟아붓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라고 설명했다. ○수주환경 악화…틈새를 뚫어라 프로젝트 물량이 급증하는데 반해 수주 환경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게 중동 지역에 진출해 있는 국내 업체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벡텔(미국) 프로다니엘(미국) JGC(일본) 지오다(일본) 스남프로제티(이탈리아) 토탈(프랑스) 등 거대 기업들이 원청 물량을 사실상 독식하고 있는 데다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로 하청물량 수주마저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권탄걸 현대건설 중동지역 본부장은 "리비아와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 해제는 경쟁 격화를 불러와 우리 기업들엔 오히려 악재"라며 "외국 기업에 원청을 주던 이란도 최근엔 자국 업체를 선호하고 있어 추가로 시장을 뚫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이처럼 수주환경이 나빠지자 국내 기업들은 가격과 기술경쟁력에서 현지 업체나 중국 기업에 비해 우위에 있는 담수발전,석유화학 플랜트 공사에 집중해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담수발전 플랜트 시장에서 독주하고 있다. 현재 중동 10개 현장에서 24억달러 규모의 공사를 수행 중인 이 회사는 올해만 30억달러에 가까운 수주 목표를 세웠다. 현대건설은 카타르 도하공항과 라스라판항구 확장공사 입찰에 참여해 20억달러의 공사물량을 따낸다는 계획이다. 철강 화학 등 제품 수출 수입에 주력했던 종합상사들도 중동지역 플랜트 수주에 사활을 걸고 있다. LG상사는 오만에서 창사 이래 최대인 15억달러 이상을 따낼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유명재 LG상사 두바이지사 상무는 "단순한 수출시장이었던 중동이 프로젝트 오거나이징 능력을 갖춘 종합상사들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두바이=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