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신입'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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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도 중순.주총이 마무리되고 후속 임원 인사도 끝난 이즈음 기업엔 온갖 '신입'이 넘친다.
새롭게 대표로 선임돼 품어왔던 '집권 계획'을 펼쳐든 사장도,월급쟁이의 '별'이라는 임원이 된 직장인도,이제 수습 딱지를 떼는 막내 사원들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점에서 모두 '신입'이다.
시인 엘리어트가 '잔인한 달'이라고 부른 4월은 그래서 이들 '신입'에게는 희망의 달이다.
새 사장과 신임 임원이 이전에는 누구도 해내지 못한 놀라운 실적을 올려보겠다며 혼자 있을 때면 슬그머니 주먹을 쥐어보는,가슴 뛰는 시절이다.
지난해 말 입사해 이제 회사 물정에 익숙해진 막내 사원들은 목에 힘이 약간씩 들어가고 회의 시간에 입도 근질근질해진다.
문제는 이렇게 '신입'들의 정신상태가 약간의 흥분을 동반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주위는 예전 그대로 봄날의 나른함에 취해 있다는 데 있다.
새 경영진들은 '그건 과거에도 많이 해봤습니다만…' 하는 식의 은근한 반발에 맥이 빠진다.
막내 사원들은 "일 많이 하면 일 더 생긴다"는 고참의 '애정 어린' 충고에 충격을 받는 일도 있다.
그러나 이건 '신입'의 시각이 아니라 '기존'의 편에서 보면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새로운 사람이 맡을 때마다 급진적 변화가 계속된다면 그동안 누비고 기워서 만들어온 조직의 안정성은 와해될지도 몰라서다.
현실적으로 성과주의 인센티브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실정에서 열심히 일할 동기도 적다.
괜히 앞장서다 다치는 경우만 더 많다는 경험칙이 직장 사회에 팽배해 있는 때문이기도 하다.
비단 기업뿐 아니다.
모든 조직은 크건 작건 앞물결과 뒷물결의 이런 충돌을 피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거라면 새로운 사람이 나타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조직의 무기력함을 극복하고 직장 사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것이 모든 신입들의 과제라고 하겠다.
하버드대 존 코터 교수 같은 변화관리 전문가들은 조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빠른 성공 사례(quick success)'를 만들어낼 것을 권한다.
작은 것이어도 상관없다.
성공 사례를 거둠으로써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모두 공유하게 되고,동시에 새 경영진이 추구하는 방향이 어떤 것인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막내 사원의 경우도 '신선한 피'로서의 자기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초심을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신입사원이 기존 관행에 물들면 조직은 더욱 늙어갈 뿐이다.
미국 인디언 속담에 '독수리는 떼지어 날지 않는다(Eagles never flock together)'는 말이 있다.
떼지어 나는 것은 잡새들일 뿐이다.
고독하지만 멀리 볼 줄 아는 독수리를 지향할 때 미래 리더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할 수 있다.
'신입'은 그러나 처음 해보는 것이 많은 만큼 오판해 큰 실수를 할 가능성도 높다.
자칫 자신의 지나친 흥분으로 없어도 될 변화를 추진하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자주 돌아봐야 한다.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역사를 바꾸는 '창조적 소수'들의 이런 실패를 '휴브리스(Hubris)',즉 성공 개념의 우상화라고 지적했다.
자신을 이제까지 성공으로 이끈 방식을 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사람답게 처음부터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는 잃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축구 경기에서도 교체 멤버 한 명이 분위기를 바꿔 놓듯 '신입'들은 조직의 에너지원이다.
그들이 뛰는 만큼 조직도 회사도 바뀌는 것이다.
경기 불씨가 살아나는 시점에 나타난 '신입'들에게 거는 기대는 그래서 더욱 크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