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들이 밤잠을 설치고 있다. 본사로부터,지역본부로부터,지점장으로부터 시도 때도 없이 밀려오는 실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오는 손님 막지 않고 가는 손님 잡지 않는다'라는 말은 가마득한 추억일 뿐. 고객을 찾아 아파트단지나 공단으로 발품을 팔아야 한다. A은행 K지점장은 "본점에서 하루에 4번씩 실적을 체크하고 있어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과거 화이트칼라의 대명사로 불렸던 뱅커.이들이 은행전쟁이라는 풍랑을 맞아 최전선에서 신음하고 있다. ○신음하는 뱅커 '들리는가 영업점의 신음소리''실적 강요에 휴일 출근과 하루 12시간 근무'.한 시중은행 본점 1층 로비에 이 은행 노조가 붙여놓은 성명서 내용이다. 은행 노조가 '일을 너무 많이 시킨다'며 경영진에 항의하는 것은 극히 보기 드문 일이다. 이 은행 일선 지점에 근무하는 Y과장은 "지난 두 달간 밤 10시 전에 퇴근해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예금과 대출 확장 캠페인은 그나마 익숙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펀드와 방카슈랑스,카드,휴대폰(모바일뱅킹) 판매까지 본사에서 밀어붙이고 있어 친구나 친지들에게까지 판촉해야 할 형편"이라고 전했다. 퇴근 후에는 펀드와 보험상품을 공부해야 한다. 주경야독이 따로 없는 셈이다. 본점이라고 다르지 않다.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 구내식당의 저녁시간 인원은 점심 때와 비슷하다. S차장은 "야근은 기본이고 주5일 근무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털어놨다. B은행 K지점장은 "은행장이 임원이나 본부장을 1년 단위 실적으로 평가하다 보니 임원들은 일선 영업점을 닦달할 수밖에 없고 그 압박이 그대로 지점장으로,일선 행원으로까지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무너지는 연공서열 뱅커들이 이처럼 실적 공포에 떨고 있는 것은 실적이 부진하면 자리 보전도 어렵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실적에 따라 연봉을 차등 지급하는 성과급제의 도입은 연공서열 의식이 강한 은행원의 '새가슴'을 긴장시키고 있다. 우리은행은 기본급의 30%를 떼내 업무성과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신인사제도를 순차적으로 도입키로 하고 이달부터 투자금융직군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이 경우 같은 등급 직원간에도 연봉이 최대 2.5배가량 차이가 난다. 가령 연봉 5천만원을 받는 책임자급이 최고 평가를 받으면 연봉이 1억9백만원으로 오르는 반면 최하 평가를 받으면 4천4백50만원으로 줄어든다. 외환은행도 실적이 우수한 직원에게 목표달성치의 10%를 떼내주는 인센티브를 도입키로 했다. 금융노조는 "성과급제는 금융노동자의 고용 안정을 침해한다"며 반발하고 있지만 대세는 거스르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은행원의 업무 강도가 높아지자 은행에 대한 취업 선호도 역시 과거와 같지 않다. '평균연봉 6천만원,초봉 3천2백만원'의 임금을 자랑하는 시중은행의 지난 1월 신입사원 채용에서 합격자 10명 중 3명이 입사를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은행은 합격자 2백10명 중 83명(39%),신한은행은 2백80명 중 79명(28%),하나은행은 80명 중 27명(33%)이 입사를 포기했다. 업무 강도가 시중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산업은행,수출입은행을 선택하거나 제조업체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