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갈길 먼 통합거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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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하기는커녕 자사주 매입이다 배당이다 해서 오히려 자금을 쏟아부어야 했어요. 이런 형편이라면 굳이 상장을 유지할 이유가 없죠."(자진 상장 폐지를 결정한 H사 관계자)
"아시아 경쟁국들과 비교해 한국은 상장 절차가 까다롭고 비용도 많이 들어갑니다. 한국 증시는 아시아에서도 '마이너 리그'를 벗어나기 힘들 것입니다."(페트리샤 티엔 액센추어 아시아·태평양지역 글로벌자본시장 담당 책임자)
통합증권거래소가 출범한 지 벌써 세 달 가까이 지났다.
하지만 거래소의 현주소는 출범 당시 내걸었던 '동북아 중심 증권시장'과는 갈수록 멀어져 가는 모습이다.
가장 큰 문제는 상장 기업수가 늘기는커녕 자꾸 줄어든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영탁 이사장이 큰소리 쳤던 외국 기업들의 상장도 아직까지 요원한 실정이다.
실제로 올들어 거래소시장(유가증권시장)에 신규 상장된 기업은 런던증권거래소와 동시에 상장한 금호타이어를 제외하곤 한 곳도 없다.
반면 신동방CP가 자진해서 증시 퇴출을 선택했고 이수세라믹도 상장 폐지를 결정했다.
또 최근 주식분포 요건 미달로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한국컴퓨터지주와 남선알미늄도 상장 폐지를 택했다.
이들이 불명예를 감수하고 자진 상장 폐지라는 길을 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상장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폐지하는 게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다.
"예전엔 상장하는 게 자금 조달에 큰 힘이 됐죠.하지만 요즘처럼 저금리 시대엔 상장이 큰 매력이 아닙니다.
더구나 상장하게 되면 공시 의무가 한두 가지가 아니고 경영권 방어와 집단소송제에도 신경 써야 하는 등 부담이 큽니다." 자진 상장 폐지를 결정한 한 회사 임원의 말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증권선물거래소는 이사장과 임원들의 보수를 얼마로 할 것인가 하는 '밥그릇 챙기기'를 둘러싸고 잡음이 일고 있다.
동북아 중심 증권거래소는 말로만 되는 게 아니다.
강현철 증권부 기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