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적대적 인수·합병(M&A)이 급증함에 따라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의 주요 기업들은 '포이즌필(독약조항)'을 도입,기존 대주주에게 신주를 배정하거나 외부세력의 지분 보유를 제한하는 등 수성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 전자업체인 마쓰시타는 12일 적대적 M&A를 막기 위해 오는 6월 열리는 정기주총에서 기존 대주주에게 신주인수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포이즌필을 도입키로 했다. 적대적 M&A 세력이 주식 공개매수(TOB)를 통해 발행 주식의 20% 이상을 매집할 경우 기존 대주주에게 미리 정한 가격으로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방식이다. 일본 대기업이 포이즌필을 도입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히타치도 경영진이 '적대적'이라고 판단한 주식 매수세력이 15~20%의 주식을 매입했을 경우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기존 주주에게 신주인수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본은 지난 2002년 개정된 상법에 따라 기업들이 포이즌필을 도입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있다. 세계적 택배업체인 미국 페덱스 역시 최근 정관을 바꿔 포이즌필을 도입했다. 페덱스는 적대적 M&A 시도가 있을 때 투자자와 주주들의 사전 승인을 받아 신주를 발행할 수 있다. 미국 장거리전화 업체인 MCI는 적대적 M&A를 막기 위해 동일인이 1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지 못하게 제한하고 있다. 이 회사는 같은 통신업체인 버라이즌과 퀘스트가 인수 경쟁을 벌이고 있는 데 대해 이 규정을 내세워 원하지 않는 기업으로의 인수를 차단한다는 방침이다. 중국 최대 포털업체인 시나도 자국 게임업체 샨다의 공개 매수에 반격하기 위해 중국 기업 최초로 포이즌필을 도입했다. 샨다가 시나 지분 0.5% 이상을 추가 확보할 경우 지분율 10% 미만의 주주들은 기존 보유분만큼 주식을 반 값에 인수할 수 있다. 조사기관인 '기관투자서비스'가 세계 5천5백여개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0% 이상이 포이즌필 조항을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미국 기업의 60%는 '임원 시차 선임제(staggered board)'를 도입하고 있다. 이 제도가 있으면 이사회 구성원을 바꾸는 데 오랜 기간이 걸리기 때문에 해당 기업의 경영권을 장악하기가 어려워진다. 반면 한국은 전체 상장기업의 5% 이상이 경영권 위협에 노출돼 있으나,외국과 달리 해당 기업들이 포이즌필 같은 자구책을 마련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없어 방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현재 국내 상법상 포이즌필은 관련 규정이 없어 기업이 정관에 반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기존 최대주주 외의 국내외 투자자가 5% 이상의 보유 지분을 통해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는 상장기업은 지난 2일 현재 83개로 전체의 5.2%에 달한다. 도쿄=최인한 특파원·김남국 기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