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흥은행에서 발생한 4백억원대의 금융사고로 금융회사들의 내부통제 시스템이 또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특히 이번 사건은 지난 해 옛 우리신용카드에서 발생한 횡령사고와 동기나 정황면에서 닮은 꼴이다. ◆내부통제 구멍 내부통제 시스템의 허점은 '본점'의 대리가 무려 16차례에 걸쳐 4백억원을 자기 주머니로 빼돌렸는 데도 은행측이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김모 대리가 일했던 부서는 본점 자금결제실.은행간 자금거래를 주로 담당하는 부서였다. 김씨는 조흥은행 대외 차입금 일부를 수차례에 걸쳐 상환하는 것처럼 속여 자금을 빼낸 뒤 두 명의 누나 명의로 만든 증권계좌에 입금했다. 잇단 금융사고를 겪은 은행들이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했다지만 고객과의 접점에서 일어나는 거래에만 초점을 맞췄을 뿐 은행간 자금거래에 대한 내부통제는 허술했던 것이다. 조흥은행측은 넉달 이상 횡령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은행에서 특정 증권계좌로 거액의 뭉칫돈이 수시로 입금되고 있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금융감독원이 은행측에 통보하자 그제서야 자체 감사를 통해 김씨의 비리사실을 적발했다. 금감원은 "조흥은행과 횡령사건의 장본인인 김모 대리가 계좌를 개설한 증권사에 검사반 8명을 투입해 사고 수습과 내부통제 시스템 점검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모럴해저드와 한탕주의 이번 사고는 지난해 4월 발생한 우리신용카드 횡령사고와 마찬가지로 합병을 앞둔 상태에서 발생했다. 합병으로 다소 혼란해진 회사 상황을 틈타 회사돈 수백억원을 자기 주머니에 있는 돈처럼 사용했다는 점에서 합병과정에 만연한 '모럴 해저드'라는 지적을 받는 대목이다. 또 주식과 파생상품 투자를 하다 발생한 손해를 한 번에 만회해 보려다 횡령액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 점도 우리신용카드 사고와 닮은 꼴이다. 김씨는 빼돌린 자금을 선물 옵션에 투자해 약 3백32억원의 손해를 봤다. 금융계 관계자는 "외환위기 후 은행원들의 직업 안정성이 급격히 떨어진 가운데 벤처 거품 등을 겪으면서 한탕주의와 모럴 해저드가 퍼져 대형 금융사고를 낳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