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에서는 노동조합이 사실상 '주인'이다.


이사장(또는 사장)을 비롯한 임원의 대부분이 관료사회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임기 3년을 채우고 나면 떠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이사장은 나그네 처럼 잠시 머물다 퇴직하다 보니 단체협약은 더 이상 손댈게 없을 정도로 노조에 유리하게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70년대 한국의 노동운동을 주도했던 방용석 근로복지공단이사장은 "우리나라에서 합리적 노동운동이 정착하려면 공기업노조부터 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근로복지공단은 2002년 당시 김재영 이사장의 뚝심을 바탕으로 파업기간 중 무노동무임금을 원칙대로 적용했으나 대신 인사·경영권을 양보하고 말았다.


사측은 업무실적평가 결과로 인한 인사상 불이익 조치를 취하지 않고 전보인사는 발령일로부터 늦어도 5일 이전에 시행한다는 것이었다.


현재 복지공단이 노사간 갈등을 빚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조항 때문이다.


공단측이 3급 차장 3백62명 가운데 업무실적평가 결과 맨 꼴찌인 1명을 전보하자 노조는 단협 위반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고용 보장이란 '철밥통'에다 높은 임금 수준을 자랑하는 공기업 노조는 대부분 인사·경영권 문제를 쟁점으로 삼는다.


건강보험공단이 최근 9백98명에 대한 인사를 단행하자 사회보험(지역의보)노조는 이 가운데 1백14명에 대해 문제를 삼으며 파업에 들어갔다.


공단측은 지역간 인력불균형 해소 차원에서 전보를 한 것인데 노조측은 원거리 전보라며 반대하고 있다.


노조는 전보시 노조와 사전협의를 거치도록 한 단협 규정을 들고 있다.


하지만 판례가 이 조항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공단측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노조가 주인 행세를 하다보니 공기업들은 정부의 임금 가이드라인을 무시한 채 편법으로 임금을 올려주며 노조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상반기엔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임금을 올려준 뒤 하반기만 되면 임금협약을 통해 다시 임금을 인상해주는 나쁜 관행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공기업은 매년 돈잔치를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한국조폐공사 대한석탄공사 한국전력공사 한국석유공사 대한주택공사 등 13개 공기업의 연도별 평균 임금인상률은 정부 가이드라인의 거의 두 배수준에 가까웠다.


지난 2001년 12.3%(정부 가이드라인 6.7%) △2002년 12.1%(〃 6.7%) △2003년 8.4%(〃 5.5%) 등을 기록했다.


특히 2002년 석유공사와 한전의 임금상승률은 각각 23.8%, 22.1%로 정부 가이드라인의 3배 이상이었다.


'좋은 게 좋다'는 분위기 속에 노와 사가 서로를 눈감아 주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난해 5조원의 부채를 안고 있던 주택공사는 퇴직자 18명을 편법으로 재고용했다.


이들의 연봉은 평균 7천6백만원에 달했다.


한국도로공사도 전체 2백3개 외주영업소 중 1백50개를 퇴직사원 1백50명에게 넘겨줬다.


이들은 퇴직금과 별도로 명예퇴직금을 1인당 평균 6천6백만원씩 받았고,정년 때까지 매년 5천만원 안팎의 연봉을 보장받았다.


도덕적 해이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