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아쉬운 오일달러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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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이 제 집입니다.하루가 멀다하고 이라크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 인근 국가로 출장을 가다보니 그렇게 돼 버렸어요."
오일달러 수주전을 취재하기 위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만난 한 기업체 지사장은 한 달에 보름 이상은 각국의 호텔에 머물며 업무를 본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가족들에겐 '빵점짜리 가장'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또 다른 회사 지사장은 한국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오만으로 향했다.
잠시라도 긴장을 풀었다간 각종 플랜트 수주전에서 '대어(大魚)'를 놓치기 십상이기 때문.
중동지역 근무 23년째인 그는 "초창기 주재원 시절엔 하루종일 물건을 팔러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검은색 구두가 먼지가 수북한 '백구두'가 돼 버리곤 했는데…"라고 회고했다.
중동에 진출한 한국 기업 임직원들은 예나 지금이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이들은 거대 기업들과 오일달러를 잡기 위해 밤낮으로 경쟁하고 있다.
열사(熱沙)의 비즈니스 격전장을 찾은 기자에게 한국 기업인들은 이구동성으로 한 가지를 부탁했다.
전쟁과 테러의 이미지로만 덧칠돼온 중동을 새로운 눈으로 봐 달라는 것이었다.
중동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버리지 못하면 못할 수록 오일달러는 멀어지고 만다는 얘기였다.
대(對)중동 외교에 대한 아쉬운 소리도 가는 곳마다 들을 수 있었다.
한 기업인은 "기업의 힘만으로는 오일달러를 잡는데 한계가 있다"면서 "대통령께서 오시기 어렵다면 중동국가 정상들이라도 한국에 초청해 끈끈한 유대를 맺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동 비즈니스는 끈끈한 인간관계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측면이 강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 지도자간 신뢰와 유대는 기업들엔 그 자체로 천군만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보세요.전쟁을 일으켜 놓고도 빼먹을 건 다 빼먹잖아요.중국 사람들도 무섭게 몰려오고 있습니다.다른 나라들은 중동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을 맺기 위해 뛰고 있습니다.우리만 뒤처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휴일에도 현지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상사 주재원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돈다.
두바이(아랍에미리트)=류시훈 산업부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