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노사정 투자유치단은 올해 초 유럽을 방문했을 때 한국 노조에 대한 독일 업체들의 인식에 새삼 놀랐다. 투자 대상인 독일 보쉬의 임원은 만나자마자 대뜸 '한국 노조는 두렵다'며 경계의 뜻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보쉬뿐만이 아니다. 다른 기업들도 이구동성으로 강성 노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왔다. 유치단은 간담회 내내 "이제 한국의 노조가 달라졌다"며 열심히 설득했지만 그는 쉽사리 긴장을 풀지 않았다. 투쟁 만능주의에 물든 한국의 노동운동은 세계적으로도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마치 활극을 보는 듯한 일부 강성노조의 파업 행태는 강성으로 정평이 나 있는 독일이나 미국의 노동운동가들조차 놀랄 정도다. 노사불안이 외자유치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세계적 경영평가기관인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은 몇년째 한국의 노사경쟁력을 꼴찌에 올려 놓고 있다. 노사불안이 세계시장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추락시키고 있다는 증거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이제 위기에 처해 있다. 기아자동차와 항운노조 간부의 채용비리,민주노총 내 강·온파간 난투극 등이 잇따라 터져나오면서 국민적 비난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경기 침체로 일자리가 줄어들고 계층간 갈등이 심화되는데도 강성 노조들이 여전히 '무소불위'의 힘을 바탕으로 갖가지 이권과 경영에 개입하며 노동현장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는 데 대한 반감이다. 대기업 노조에 속해 있는 '노동귀족'들의 양면성도 문제다. 겉으로는 비정규직 등 '무산(無産)노동계급'과의 대동단결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채 내몫 늘리기에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업자가 넘쳐나고 비정규직 차별대우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연봉 7천만원이 넘는 일부 노조원들은 두자릿수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다. 일부 대기업 노조가 배척당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과격 노동운동의 폐해는 이뿐만 아니다. 과도한 임금인상으로 인해 계층간 양극화가 확산되고 공장의 해외 이전도 늘고 있다. 일하지 않고 회사로부터 임금을 받는 전임자의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경영진이 고유 권한을 행사하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다. 근로자의 전환 배치나 전보 등을 하려 해도 노조의 동의를 먼저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감이 없는 작업장의 근로자를 다른 공정으로 돌리고 싶어도 노조가 반대하면 더 이상 추진하기 힘들다. 회사가 망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파업을 중단하지 못하는 노조도 여전히 존재한다. '노동운동=투쟁'으로 잘못 인식하고 대화와 타협을 외면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노조 간부를 잘못 둔 죄로 일반 조합원들만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이미 철 지난 계급투쟁설을 선동하는 좌파 학자들의 책임도 크다. 계급 이념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순진한 노동자들에게 좌파 이론을 주입시켜 '투사'로 만들기 때문이다. 권력화.관료화돼 '제5의 권력'으로까지 불리는 노동조합. 그들이 바뀌지 않는 한 '주식회사 대한민국'은 성장동력을 잃은 채 표류할 수밖에 없다.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은 한낱 헛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제 노조는 스스로에게 메스를 가해야 한다. 우리나라 경제를 위해서나, 노동조합 자신을 위해서나….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