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표 드라마'엔 빠지지 않는 게 있다. 극중 할아버지 할머니의 대사를 통해 노년층의 생각을 대변하는 점이다. 횡단보도의 점멸 신호등이 나이 든 이들에겐 너무 짧고 불안감을 조성한다고 성토하거나 "노인네 앞에서 낡아서 버린다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고 야단치는('내 사랑 누굴까') 대목 등이다. 사극의 형식을 빌려 여성의 사회진출 문제를 다뤘던 드라마 '대장금'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두려울 게다. 무서울 게야. 그러나 약하다 생각하면 동산도 태산으로 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강하다 생각하면 돌풍도 한낱 스치는 바람일 뿐이야. 그동안엔 내가 네 바람막이가 되었다만 이제는 니가 태산이 되어야 해." TV 드라마엔 이렇게 시대와 사회의 이슈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묻어난다. 무역회사를 그만두고 미용 기술을 배우는 남자를 등장시켜 직업의 다양화를 시도하거나('루키'), 미혼모가 되도록 내팽개쳤던 남자가 뒤늦게 친부라며 아이를 요구하는 내용을 통해 호주제 문제를 다루는('사랑은 이런거야') 게 그것이다. 방송극이 지닌 은근하면서도 막대한 영향력 때문일까. 정부 부처와 기관에서 정책 홍보를 위해 방송 작가들에게 설명회나 간담회를 개최하는 일이 늘었다고 한다. 국무조정실과 보건복지부는 출산 장려, 환경부는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 폐기물 분리 수거, 관세청은 세관 업무를 제대로 알리고자 작가들을 초청해 정책과 실무를 알려준다는 얘기다. 드라마의 힘은 세다. '사랑이 뭐길래'에 삽입된 '타타타'는 무명 가수 김국환을 일약 스타로 만들었고 '모래시계'는 이름없던 바닷가 마을 정동진을 국내 최고 명소의 하나로 띄웠다. 그러나 TV 드라마가 긍정적 요소만 지닌 건 아니다. 조폭에 대한 미화, 출생의 비밀을 내세워 미혼모나 혼외정사를 대수롭지 않은 양 묘사하는 것, 눈요기를 위해 수입 자동차나 이른바 명품 의류와 가방 홍보에 앞장서는 것도 드라마다. 드라마를 통한 정책 홍보는 잘만 하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정부에서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게 아니고 실상을 제대로 알려주는 일이다. 나머지는작가와 연출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