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창 <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jckim@bok.or.kr > 도종환 시인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은 이렇게 시작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1997년 말 경제위기 이후 기업 도산이 속출했고 수많은 금융회사가 퇴출했으며 대우그룹 등 대기업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금융시장이 극도로 불안정했다. 이와 같은 소용돌이 속에서 금융감독기구에 몸담아 위기극복 과정에 참여했던 필자로서는 문제 해결에 골몰하느라 머리가 늘 복잡했고,특히 벤처 사건으로 언론이 금융감독기관의 도덕성에 대해 대서특필하던 2000년 말께는 하루 하루가 괴로운 때였다. 그때 동료 간부 한 사람이 e메일을 보내왔다. 그것이 바로 '흔들리며 피는 꽃'이었다. 이후 경제가 다시 안정되고 감격의 월드컵이 온 국민을 하나로 만든 2002년 6월이 되었다. 필자는 그때 그 간부에게 김영진 시인이 쓴 '희망이 있으면 음악이 없어도 춤춘다'로 화답했다. 그 시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거친 물줄기를 거슬러/모천으로 돌아가는/연어의 처절한 투혼/죽음으로 큰 삶을 이루는/찬란한 개선이다/오오,희망이 있으면/음악이 없어도 춤춘다." 연어는 민물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살다가 태어난 민물로 돌아가 알을 낳고 죽는다. 자신은 죽지만 후손을 남기고 희망을 남긴다. 그해 6월 우리는 해냈다. 승리도 맛보았고 승리보다 더 값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긍지도 얻었다. 희망을 얻었고 희망을 전달했다. 바람이 거셀 때 격려의 시 한편은 버팀목이 되었고 희망을 주는 시 한편은 음악이 없어도 춤추게 했다. 지금은 너와 나 우리 모두에게 이해인 시인의 '말의 빛'을 드리고 싶다. "쓰면 쓸수록 정드는 오래된 말/'사랑합니다'라는 말은/억지부리지 않아도/하늘이 절로 피는 노을 빛/'고맙습니다'라는 말은/언제나 부담없는/푸르른 소나무 빛/'용서하세요'라는 말은/부끄러워 스러지는/겸허한 반딧불 빛." 우리 모두 서로 사랑하고 서로 고마워하고 남의 잘못도 용서해 줄 수 있는 이웃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