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의 정식 명칭은 공기조화기(空氣調和器)다. 액체가 증발할 때 주위에서 열을 빼앗는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온도와 습도를 조절, 실내를 쾌적하게 만들어 줘 사무실과 업소는 물론 가정에서도 여름철 필수품이 되다시피 했다. 문제는 실외기다. 무겁고 소음과 열기가 심한 만큼 설치하기가 간단하지 않다. 아파트에선 미관과 안전,이웃을 감안해 베란다 안에 둬야 하는데 문을 열어놓기 싫어 굳이 바깥벽에 내 다는 얌체족도 있다. 복도형 아파트나 주거용 오피스텔의 경우 실외기 설치장소가 마땅치 않아 복도 쪽 방엔 에어컨을 놓기 어렵다. 실외기가 필요 없다는 제품들이 있지만 모터 소리가 만만치 않고 더운 바람을 내보내는 관을 달아야 한다. 신축 아파트에 실외기 대를 따로 만들고,실외기 하나에 에어컨 두 대를 연결시키는 형태가 유행하고,주상복합 아파트에 중앙집중식 냉방시설을 하는 건 이런 문제들을 줄여보려는 노력일 터이다. 서울시 등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에서 5월부터 에어컨 실외기 단속을 실시한다는 소식이다. 상업 및 주거지역 도로변 건물의 실외기를 높이 2m 아래 두거나 열기가 보행자에게 직접 닿도록 하면 냉방 면적에 시가 표준액을 곱한 금액의 최대 10%까지 이행강제금을 물린다는 것이다. 여름철 뜨거운 실외기 바람을 맞았을 때의 불쾌함과 짜증스러움은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보도나 골목에 놓인 건 실외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입간판과 쓰레기통은 물론 갈비집 앞엔 벌건 숯불, 가게 앞엔 산더미 같은 물건이 쌓여 있고 아예 보도가 자기 땅인 양 파라솔과 의자를 내놓고 영업하는 곳도 수두룩하다. 뿐이랴. 배전판과 판매대 안내표지판 등 각종 시설물도 길을 막는다. 일반인도 신경 써서 이리저리 피해가야 하는 판이니 시각장애인이나 지체장애인은 다닐 엄두도 내기 어렵다. 세금 들여 유도 블록을 깔아봤자 각종 장애물에 부딪쳐 자칫 사고 나기 십상이다. 좋은 도시 좋은 나라는 장애우를 비롯한 소수자들이 마음놓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장애인의 날'이라고 법석을 떨 게 아니라 평소 보행권이라도 확보해 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