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표를 잃었다.' 한국육상은 19일 기록의 날을 맞았다. 여자 장대높이뛰기의 희망 최윤희(공주대)가 '마의 4m 벽'을 돌파하며 생애 12번째 한국기록을 작성하고 여자 멀리뛰기 기대주 정순옥(동아대)도 한국기록을 세워 우중충한 날씨 속에 국내 육상 최대 이벤트인 종별선수권을 시작한 육상인들을 기쁘게 한 것. 그러나 현장 지도자들은 '기록 풍년'에도 불구하고 방향성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는 대한육상연맹의 무능과 시.도 연맹의 지역 이기주의에 대해 쓴소리를 잊지 않았다. 최윤희를 지도하는 이 원 감독은 "저렇게 뛰어난 선수를 이렇게 밖에 지도할 수 없는 현실이 서글프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작년까지 전북 소속으로 김제여고를 다닌 최윤희는 올해 공주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한국판 이신바예바'로 불리며 세계 수준을 향해 도약하고 있는 최윤희가 학교를 다니는 공주에는 아이러너컬하게도 장대높이뛰기 도약대가 아예 하나도 없다. 최윤희는 불가피하게 주말 고향인 전주로 내려와 전주공설운동장에서 이 감독과 함께 훈련을 하고 주중에는 학교를 다니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이 감독은 "내가 윤희를 실어 나르면서 틈새 훈련을 하고 있는 셈"이라며 "맘놓고 훈련할 수만 있다면.."이라고 말했다. 최윤희가 굳이 훈련시설도 없는 공주대를 택한 것은 전북도가 여자장대높이뛰기는 전국체전 정식 종목이 아니라는 이유로 선수 영입에 난색을 표시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육상의 꽃'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종목이 장대높이뛰기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체육계의 현주소는 오로지 전국체전 성적에만 목을 매달고 있는 셈이다. 26년 묵은 한국기록을 깨뜨릴 기대주로 꼽히는 전덕형(충남대)을 일본에서 지도하고 있는 일본인 미야카와 지아키(도카이대) 코치도 "더 많은 한국선수들을 길러내고 싶다"고 말했다. 작년까지 한국 육상의 객원코치로 적잖은 선수들을 지도해온 미야카와 코치는 올들어 설 자리를 잃었다. 미야카와 코치의 말에는 한국 육상에 나름대로 애정을 표시한 외국 노장의 의욕을 저버린데 대한 섭섭함도 적잖게 배여있었다. 순회코치는 외국인 코치에 적용되는 대한체육회의 재정지원을 받지 못하는데다 지난해 국내 코치들과 지도방법을 놓고 갈등을 빚는 바람에 올해는 오로지 전덕형의 '개인교수' 노릇만 하고 있는 셈이다. 육상연맹의 외국인 코치 영입 프로젝트도 지지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연맹은 지난 연말부터 창던지기 등 일부 종목에 외국의 저명한 코치를 데려온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4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핀란드 출신의 창던지기 코치를 '접촉'하고만 있을 뿐 성과가 없다. 경보의 경우 삼성전자가 영입한 폴란드 출신 보단 코치를 대표팀 코치로 '임대'해 쓰겠다는 방침만 세워놓은 상황. 육상연맹 관계자는 "솔직히 외국 코치를 데려올 지 아니면 유망주들을 장기 계획으로 외국에 내보낼 지 명확한 방침이 서 있지 않다"고 말했다. 육상계의 한 인사는 "솔직히 많은 육상인들이 오는 9월 인천에서 열리는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서 혹여 우리가 노 골드에 그치면 무슨 망신일까를 먼저 걱정하는 것 같다. 장기적인 선수 육성 프로젝트는 뒷전에 밀려있는 게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광주=연합뉴스) 옥 철기자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