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각종 경기지표들이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체감경기는 아직 신통치 않다. 백화점이나 전자상가들을 찾는 소비자들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늘어났고,극장이나 유원지를 찾는 인파도 작년보다 불어났지만 매출은 여전히 늘지않고 있다. 20일 한덕수 경제부총리와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각각 국내의 대표적인 경제연구소장 및 이코노미스트들과 가진 간담회에서도 참석자들은 "내수가 나아지면서 느낌이나 분위기가 많이 개선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시장 상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매상은 별로"라고 하소연한다. 경기지표들은 청신호를 보이고 있는데도 시장 상인이나 소비자들에게는 왜 '경기호전'이 피부에 와닿지 않는 걸까. 한국경제신문은 '지표경기와 체감경기의 괴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이유'를 생활현장 밀착취재를 통해 짚어보았다. 30대 샐러리맨이 주류를 이루는 대표적 중산층 도시인 경기도 일산 신도시 L복합상영관.지난 17일(일요일) 관객수가 작년 같은 때에 비해 5%정도 늘었다고 극장측은 밝혔다. 하지만 이 곳에서 팝콘 점포를 운영중인 김정국씨(49)는 "손님이 늘어도 매상은 제 자리"라며 "예전엔 영화관 손님의 거의 대부분이 팝콘을 샀지만 요즘은 아무것도 사지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푸념했다. 극장가 샐러드 가게집 주인 박은숙씨(49)도 "예전엔 3인 가족이 오면 당연히 대형을 주문했지만 요즘은 으레 중소형을 시키는 식"이라며 "손님이 조금 늘어도 짠돌이 소비를 하니 경기회복이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짠돌이형 소비패턴'은 요즘 중산층이 많이 찾고 있는 서울 광진구 테크노마트에서도 두드러진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보너스가 대거 지급되는 등 가외 수입이 늘어난 시즌에도 이곳을 찾는 쇼핑객들은 미리 점찍어놓은 상품만 구매할 뿐 매장 내 아이스크림 매점 등에는 눈길을 돌리지 않는 경우가 늘어났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매장 입구 회전문을 돌리고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가동하는 데 들어가는 전기료가 늘어난 것으로 봐서 내장 고객이 증가한 것은 틀림없다"면서도 "하지만 그에 비례해서 매출이 늘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생활경기 회복이 더딘 가장 큰 이유는 달라진 소비패턴에서 찾을 수 있다. 장기 불황의 여파로 경기가 회복 기미를 보여도 쇼핑 계획을 미리 짜놓은 다음 시장에 나오는 '짠돌이 계획 소비'가 일반화되고 충동구매족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이로 인해 주요 등산로 입구에서도 상춘객은 늘어난 반면 김밥집 등 식당을 찾는 사람들은 부쩍 줄어들고,가져온 과일을 깎아먹기 위해 과도를 사는 손님들만 이따금 눈에 띄는 식이다. 시장 상인들은 "과거엔 용산전자상가의 전자제품 매출이 늘어나면 인근 음식점 장사도 잘됐지만 요즈음은 전자제품 쇼핑 나온 소비자들이 외식까지 하고 가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소비계층의 주도세력으로 떠오른 2030세대들이 인터넷 검색을 통해 꼼꼼히 상품정보를 비교해보고 나서야 오프라인의 구매를 결정하는 '심사숙고형'으로 바뀐 것도 소비경기 회복이 더딘 이유 중 하나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되더라도 과거처럼 소비시장이 전반적으로 좋아지는 '흥청망청'풍조는 기대하기 힘들고 '시즌특수'나 '신상품 스폿경기' 등이 보편적인 모습을 띠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안정락.유승호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