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별교섭체제를 유지해오던 선진국에서도 개별교섭으로 분권화되는 추세다.기업간 경쟁격화로 임금 격차가 벌어지면서 공동교섭을 벌이는데 한계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벌어들이는 게 다른데 임금만 비슷하게 줄 수는 없다는 게 기업별 교섭으로 돌리도록 하고 있다. 일본은 개별 기업단위의 노사협상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미국도 많은 노사가 개별협상으로 돌아서고 있다.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국가들은 아직도 대부분 산별교섭에 의존하고 기업별 교섭체제를 채택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유럽에서 산별노조가 발달한 것은 역사적 전통에 기인한다.중세 이후 같은 직종에 종사하던 장인들의 모임인 ‘길드’가 발전해 형성됐다.초기 길드는 장인들의 이익단체였다.근대화가 진행되면서 길드는 직종별 노조의 형태를 띠고 여기에 반숙련,미숙련 노동자들을 합치면서 오늘의 산별노조가 됐다.따라서 산별노조는 기본적으로 회사가 중심이 아니라 업종이 중심이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동일업종의 노동자들이 산별노조를 만들어왔기 때문에 노동자간 임금이나 근로조건 격차가 크지 않다.또 오랜 노사협상 전통의 영향으로 함부로 파업을 벌이거나 하는 경우도 드물다. 유럽에선 산별교섭이 결렬되면 산별노조내 한개 또는 몇개 사업장을 선정해 파업을 벌이도록 한 뒤 그래도 요구조건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파업사업장을 늘려가는 식이다. 파업기간중 임금을 지급할 파업기금이 한정돼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합리적 노사문화가 정착돼 있어서다. 우리나라처럼 미리 파업일정을 잡아놓고 사용자측을 압박하는 경우는 아예 없다. 최근들어 핵심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집단파업을 벌인 경우가 나타나긴 한다.2003년 6월 독일 금속노조(IG메탈)가 동독지역 근로자의 근로시간을 주당 38시간에서 35시간으로 줄여줄 것을 사용자측에 요구하며 폴크스바겐 등 16개 사업장이 벌인 파업이 그것이다. 이 파업은 1945년 패전이후 독일 노동현장에서 나타난 최대규모의 대형 분규로 기록되고 있다.물론 협상도 하기전에 파업투쟁을 공표해 사용자들을 압박하는 경우는 없다.다만 협상을 거치면서 요구조건이 관철되지 않았을때 노동관계법에 따라 파업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유럽에도 개별교섭을 선호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네덜란드만 해도 필립스나 KLM항공사 같은 큰 회사들은 산별노조체제를 따르지 않고 기업별 협상을 벌인다. 독일의 메르세데츠 벤츠 등도 IG메탈 가입노조들이 가이드라인으로 삼을수 있도록 먼저 패턴교섭을 벌인다. 현재 경기위축등으로 기업간 경영환경에 차이가 많이 나면서 산별로 체결한 노사간 협약에 대한 구속력도 약해지고 있다. 사용자측은 근로시간 연장등에 합의해주지 않을 경우 헝가리 체코등 임금이 싼 동구권으로 공장을 이전하겠다고 경고하자노동조합이 큰 저항없이 받아들이기도 했다. 노동환경이 변한 만큼 산별체제에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