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 올들어 위조지폐 적발 보도가 빈발하더니 지난 18일 한국은행이 새 돈을 찍어 헌 돈과 바꾸기로 발표했다. 상품이 명품이 되면 반드시 짝퉁이 나돌 듯이 위조지폐가 나돈다는 것은 그만큼 원화도 값나가는 화폐로 인정된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북한이 '원쑤'의 나라 미국 돈을 위조한다는 의혹은 짙다. 반대로 북한 돈을 위조할 만큼 할 일 없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 없다. 요즘 한국 돈 위폐가 국내 제작물보다 중국 경유로 들어오는 외국산이 늘어나고 있다 한다. 한국 돈의 환율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화폐가 쓰이기 시작한 이래 줄곧 화폐의 발행자와 위조자 사이에는 서로 상대방의 기술수준을 넘어서려는 경찰과 도둑의 관계가 성립돼왔다. 화폐가 오늘날처럼 정교하게 만들어진 데에는 위조범들의 공로가 크다. 그래서 화폐제도에는 항상 그 시대 최첨단기술이 동원된다. 영국 왕립조폐국의 책임자로 당대의 석학 아이작 뉴턴(1642~1727) 경이 등장하면서 화폐를 훼손하는 좀도둑질을 막기 위해 주화 테두리에 새겨 넣은 깔쭉깔쭉한 돌기 테두리가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복사 기술이 일취월장 발달하고 장비가 좋아져 위조가 날로 수월해지는 반면 우리의 돈 제작은 1983년 대수술 이후 20여년간 제자리걸음하고 있었으니, 위폐가 늘어난다고 해서 놀라운 일이 아니다. 드디어 당국이 팔을 걷고 나서 2006~2007년에 걸쳐 지폐를 교체하게 됐다. 그런데 금번 조치의 뜻은 좋으나 그 내용이 찜찜하다. 국민의 불안심리를 잠재우려 마음 쓴 것은 잘한 대목이다. 겉으론 단순한 화폐교환을 말하지만,속으론 교환에 일정한 제한을 둬 지하자금의 색출이나 부분적 자금 동결을 목적으로 삼는 게 일반적 경험이었다. 과거에 두 차례 화폐개혁(동란중과 군사정변 이듬해)이 그러했다. 북한도 민간 재산의 수탈 수단으로 수차례 화폐개혁을 단행해왔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라는 법이다. 당국은 다른 뜻이 없음을 강조해야 한다. 여기에 실패하면 대체자산(외국돈 부동산 등) 수요에 불을 지펴 경제교란이 촉발된다. 화폐교환 비용이 대략 총 4천7백억원으로 높게 잡힌다. 이것은 엉거주춤한 정책자세 탓이 크다. 시중에 많이 깔린 돈(약 31억장)을 새로 인쇄하는 비용이 1천9백억원으로 추산되고, 많은 인쇄 물량 때문에 화폐교체 기간이 2년여로 늘려 잡히고 있다. 그만큼 신권과 구권이 혼재하는 시장혼란 기간이 늘어질 예정이다. 발상을 전환하면 비용을 절감하는 길이 훤히 보인다. 첫째는 고액권 도입이다. 1만원권 대신 10만원권을 찍으면 비용이 10분의 1로 준다. 둘째는 그동안 논의가 있었고 언젠가는 단행해야 할 일이면 이왕 화폐교환하는 이번 기회에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를 1천 대 1 또는 1백 대 1로 줄이기)까지 동시에 시행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비용을 한번 치르고 두가지를 얻을 수 있어 일석이조인 셈이다. 세상의 자칭 '성인군자'들은 말한다. 고액권 발행은 물가를 부추기고,부패를 조장한다고. 신권과 구권을 당분간 함께 통용시키는 상황에선 인플레 자극 우려는 접어도 좋다. 만일 부패방지 목적으로 고액권을 없애고 1천원권만을 통용시키거나,지폐를 아예 없애고 동전만 쓰게 하면 어떨까? 모든 상거래에 주민번호와 화폐 일련번호를 기록해 국세청에 신고하도록 하면 부정부패가 근절될까? 빵 한 개도 실명의 신용카드로 사게 하면 어떨까? 분명한 것은 시장경제는 정체되고 국민경제는 크게 후퇴할 것이나, 부패근절은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센서 등 핵심부품을 수입해야 하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과 자판기의 경우 교체부품을 최소화하면 비용도 경감하고 폐기물 발생도 줄일 수 있다. 요즘 유전개발을 빙자해 유용된 철도공사 자금 고작 80억원 가지고 세상이 시끄럽다. 그러나 정작 4천7백억원(별도의 리디노미네이션 비용 감안하면 1조원 이상) 이상의 비용이 드는 화폐교환 문제에는 정부관료도 정치인도 둔감하고 언론도 벙어리다. 그릇된 국민정서와 정책당국의 근시안이 이처럼 엄청난 비용을 치르게 하는 사안이 또 있을까. 무엇이 진정 국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