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영 < 건국대 교수ㆍ부동산학 > 새로 임명된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의 첫번째 각오가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지속적으로 벌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류의 부동산 정책은 지난 박정희 정권 이래 되풀이돼 온 구태의연한 접근법이다. 투기를 막아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려는 접근법은 지난 40년간 실패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가지 이유는 싸워야 할 적군이 누구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일상 어법에서 투기란 대개 '남이 하는 부동산 투자'를 의미한다. 언론이나 TV 정책토론에서도 부동산을 통한 재테크를 모두 투기라 부르고 이를 매도하는 것을 흔히 본다. 그러나 부동산도 엄연한 자산이며 주식이나 채권과 같은 재테크 수단일 수밖에 없다. 이런 본질을 아무리 부정해 봐야 소용없다. 따라서 투기와의 전쟁에서는 부동산을 거래하는 모든 국민이 적이 된다. 이런 무리한 싸움은 부동산 시장을 잠시 동결시킬 뿐이며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계층간 분배구조 악화를 이유로 부동산 가격 상승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주식시장에서 주식 가격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없듯이 부동산 가격 상승을 문제시하는 것은 잘못이다. 물론 부동산으로 자산을 증식하는 행위가 전체 국민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면 당연히 규제되어야 한다. 투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는 인과론이 흔히 지적되지만,소수 투기꾼의 투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는 진단은 틀렸다. 서울 강남권만 해도 수십만 채의 주택이 그만한 숫자의 소유자들에 의해 거래되고 보유된다. 이렇게 큰 시장에서 주택 가격을 장기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는 세력은 없다. 오히려 강남 주택이 그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는 다수의 실수요자들이 높은 가격에 거래하기 때문에 가격이 오른다. 다른 예로 현재 충남 연기?공주 지역은 몇 겹의 규제장치 아래 토지 거래가 거의 중단된 상태이지만,투기 유무와 무관하게 사업이 진행되면서 토지 가격이 오를 것이다. 가격은 오를 이유가 있을 때 어차피 오르게 마련이다. 소수 투기자들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편리하지만 안이한 처방이다. 투기가 문제가 아니라면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로 부동산 시장의 경기변동 진폭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1980년대 중반 이후의 장기적인 부동산가격 상승률은 의외로 낮다. 1985년~2004년 사이 주택가격 상승률은 전국 평균 연 3.5%,서울은 연 4.0%였고 토지 가격은 1994년 이래 10년간 전국은 연평균 0.34%,서울은 0.66% 상승했을 뿐이다. 부동산가격 급등은 다만 가격 상승이 특정 시기에 집중되어 나타나서 문제인 것이다. 부동산 공급 측면에서나 거시경제 운용 측면에서 이런 진폭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로 고소득층의 고급주택 가격동향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저소득층의 장기적 주거복지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고급 주택지인 강남의 아파트 가격이 오른다고 해서 인간다운 주거 조건을 박탈당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강남에서 살아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저소득층의 주거 실태가 어떠하고 어떤 정책이 그들에게 주거 안정을 가져올 것인지에 관심을 돌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택지 공급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지난 90년대 말 난개발 문제가 제기된 이후 선(先)계획-후(後)개발을 표방하는 국토이용 체계가 도입되었다. 여러가지 긍정적인 기대효과에도 불구하고 규제가 강화되면서 민간의 택지 개발이 거의 불가능해짐에 따라 향후 몇년 내에 주택건설 부족 및 집값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급하나마 공공 부문에서라도 충분한 택지 개발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이미 계획 중이거나 추진 중에 있는 수도권 지역 신도시의 규모를 확대하는 것이 한가지 좋은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