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借船出海(제촨추하이).' 배(외국 선진기업)를 빌려 넓은 바다(세계 시장)로 나간다는 뜻이다. 요즘 중국 언론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이 말은 중국기업의 활발한 국제화 움직임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중국 기업의 국제화는 주로 '해외기업 인수합병(M&A)'으로 이뤄진다. 상하이자동차의 쌍용자동차 인수,르노보(롄샹·聯想)의 IBM PC사업 인수 등이 대표적인 예다. 중국기업의 M&A 규모는 작년에만 20억달러를 넘었다. 중국이 '배'를 빌리는 가장 큰 이유는 기술이다. 중국은 그동안 선진기술 도입을 해외직접투자(FDI)에 의존해왔다. 외국기업을 유치하면 선진 기술도 함께 들어올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돈은 들어왔지만,기술 유입은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게 중국 경제전문가들의 평가다. 외국 선진업체의 기술 방어벽,돈벌기에만 급급한 중국기업의 소극적 기술정책,전반적인 기술수준의 낙후 등이 낳은 결과다. 그 대안이 바로 '제촨추하이'정책이다. 자체 기술개발이 안될 바에는 차라리 외국기업을 통째로 사들여 기술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총알(자금)'은 충분하다. 중국기업들은 지난 25년 동안의 개혁·개방을 거치면서 거대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자본을 축적해왔다. 중국기업들은 이같은 풍부한 자금력을 무기로 해외기업을 사냥하다시피해 기술과 해외시장 마케팅 노하우 등을 손에 넣고 있는 것이다. 한국기업이 중국 해외기업 사냥의 좋은 타깃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절박한 상황에 처한 몇몇 한국기업이 중국인의 손으로 넘어갔고,일부에서는 아직도 매각협상이 진행 중이다. 그렇다고 한국기업의 중국 매각을 탓할 것은 못된다. 중국시장을 공략할 수 있게 되는 장점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중국에 팔 기술이 있기에 중국이 한국을 협력파트너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우리가 중국에 빌려줄 '배'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기술 없는 한국기업에 중국이 협력을 제의할 리 없고,그런 만큼 중국시장은 더 멀어질 뿐이다. 우리가 중국보다 한발 앞선 기술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하이=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