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주부라는 직업 ‥ 하창조 < ENI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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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창조 < ENI 대표 ㆍ cj@enicorp.biz >
직장생활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더욱이 요즘처럼 위 아래의 평가를 함께 받는 시대엔 주어진 업무도 업무지만 주위 사람 눈치 보기도 만만치 않다. 많은 남편들이 지친 심신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힘드셨죠?"라며 맞아주는 아내를 보는 것만으로도 어려움을 잊고 보람을 느끼는 건 그런 까닭일 것이다.
아침 나절 직원들이 회사 근처 식당에서 라면 등으로 끼니를 때우는 걸 본다. 집안 일로 지쳐 곤히 자는 아내에게 차마 식사 준비까지 해달라고 할 수 없다는 말도 듣는다. 정말 자상하다 싶지만 한편으로 아침도 제대로 못먹고 출근하는 모습이 애처롭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가끔 만나는 기업 임원들은 가정에서 예전 아버지 세대가 받았던 것과는 거리가 먼 대우를 받는다며 나이 들어 고생하지 않으려면 지금 아내의 눈치를 잘 봐야 한다고 말한다. 간혹 부부동반 모임에서 그들의 부인을 만나면 남편은 물론 주위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너무 부족한 게 아닐까 여겨질 때도 있다. 왜 그럴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혹시 솔직한 대화가 부족한 탓은 아닐까 싶다. 밖에서 힘들 때 아내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대신 직장에서의 능력을 과대포장해 힘있는 남편임을 과시한 나머지 아내가 남편의 어려움을 알지 못하고,나아가 부부모임 같은 곳에서 남편의 힘을 믿고 행동하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언젠가 독일에서 활동하는 인형작가 김영희씨의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라는 책을 읽으면서 독일 부부의 역할 분담에 대해 생각했던 적이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독일 맞벌이 부부의 경우 신체적으로 약한 아내보다 남편이 더 많은 가사를 책임진다고 한다. 그러나 아내가 전업주부인 경우엔 거실 유리만 조금 지저분해도 남편이 아내에게 불평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적었다. 남편은 밖에서 일하는 직장인,아내는 집안에서 일하는 직장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대부분이 맞벌이인 독일에서 아내가 전업주부인 남편은 가정을 위해 아내 몫까지 두 배로 일하는 만큼 주부도 귀가한 남편을 편안하게 해주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가정이란 직장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주부는 가족의 건강과 미래의 발전,행복을 창출하는 전문직이다.
가족은 주부라는 전문직을 인정해 주어야 하며,주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전문직에 종사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가정을 이끌어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