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년을 넘는 역사를 가진 '올드(Old) 브랜드'들이 시련기를 맞고 있다.

세기를 넘어 부동의 1위를 고수해왔던 전설적인 기업들이 후발 강자들에게 밀리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일찍이 20세기 초에 대량생산을 처음으로 도입했던 미국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는 일본 도요타와 혼다에 길을 비켜주고 있고,전세계에 콜라를 유행시킨 미국 코카콜라는 펩시에,하늘길을 개척한 보잉은 유럽 연합사인 에어버스에 덜미를 잡혀 코너에 몰려있다.

○'올드 브랜드'의 초라한 성적표

코카콜라는 올 1분기 순이익이 전년동기보다 11% 줄었다고 최근 발표했다.

지난 1997년 로베르토 고이주에타 회장 사망 이후 지금까지 7년여동안 최고경영자(CEO)를 세번이나 교체하는 진통을 겪으면서 새로운 사업에 전혀 손을 대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내리막길을 타고 있다.

반면 2000년부터 연평균 12%의 순이익 증가율을 보이고 있는 펩시는 지난 1분기에도 순이익이 13% 늘었다.

4년전 코카콜라 이사회가 막판에 변덕을 부리는 바람에 펩시에 넘어가 버렸던 스포츠음료 게토레이가 '효자'역할을 했다.

펩시는 코카콜라와는 대조적으로 96년 이후 게토레이를 포함,3개사를 인수하는 등 적극적인 시장개척에 나서고 있다.

격주간지 포천은 코카콜라 이사회가 너무 경직돼 있다며 이 회사를 은퇴한 원로 경영진이 수렴청정하는 '중세 왕국'으로 묘사했다.

일본 소니도 '과거의 영광'에서 못 벗어나는 기업으로 꼽힌다.

지난 70년대 '워크맨'으로 쌓아올린 명성을 서른살 젊은 미국 애플에 무기력하게 넘겨주는 추세다.

이 회사는 2004 회계연도(3월결산법인) 영업이익률이 1.3%대로 추락했다.

이는 전년(2.5%)의 절반 수준으로 전CEO인 이데이 회장이 목표로 했던 10%선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성적표다.

소니는 인터넷 열풍 속에서 워크맨의 후속작 개발을 게을리한 채 '유비쿼터스'나 '종합엔터테인먼트'같은 허울 좋은 구호만 내세우다 '아이팟'이라는 참신한 디지털 음악 재생기를 내놓은 애플에 추월당했다.

세계 민항기시장에서 상징적 존재인 보잉도 2000년 독일 프랑스 스페인 연합으로 탄생한 에어버스에 밀리는 추세다.

1916년 창사 이래 세계 민항기시장 누적 점유율이 70%에 달하는 보잉은 2003년 연간 판매대수에서 에어버스에 처음으로 역전된 데 이어 올 들어서는 불과 57대를 팔아 에어버스(1백23대)의 절반수준으로 추락했다.

○세계화가 브랜드 인지도 무력화

올드 브랜드들의 잇단 수난은 세계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때문이다.

이들 골리앗은 무한경쟁을 요구하는 세계화의 흐름을 타지 못하고 높은 브랜드 인지도에만 의존하다가 후발업체들에 시장을 내주는 상황으로 몰리게 된 것이다.

구조조정을 게을리해 고비용 구조가 고착화된 GM과 포드가 대표적인 사례다.

소비자 인식이 바뀐 것도 골리앗들이 무너지는 이유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소비자들은 부모가 쓰던 브랜드를 그대로 물려받는게 예사였지만,지금은 어려서부터 커진 구매력을 바탕으로 자기들의 코드에 맞는 브랜드와 상품을 직접 고른다.

코카콜라가 브랜드가치 평가에서 줄곧 1위를 지키면서도 실적은 곤두박질치고 있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생존전략은 '자기 파괴'

GM과 코카콜라 등 골리앗들의 공통점은 사업 내용과 방식이 창사 이래 거의 바뀌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1888년 설립때부터 콜라만 팔았던 코카콜라는 생수 등을 사업에 추가하긴 했으나 지금도 매출의 1백%를 소프트 음료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1위 컴퓨터 제조업체에서 최근 IT서비스 회사로 탈바꿈한 IBM에서 보듯 이제는 아무리 확고한 시장 지배력을 가진 업체라도 자기를 파괴하는 혁신 없이는 성장과 존속이 불가능하다.

IBM은 2001년부터 아웃소싱 및 컨설팅 등 서비스 매출이 하드웨어부문을 능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서비스매출이 하드웨어보다 48%나 많았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