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전통주를 가진 나라는 아마도 중국일 것이다. 지방마다 생산되는 전통주는 현재 유통되는 것만도 4천5백여종이나 된다고 하니 인구만큼이나 술의 종류에 놀라게 된다. 그 중에서도 중국을 대표하는 술은 단연 '마오타이'다. 진시황과 양귀비가 즐겨 마셨다고 하는 마오타이는 "중국의 혼을 빚어 만드는 술"이라고 할 정도로 중국인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처럼 오랜 전통을 간직한 민속주인데도 국제적인 성가를 얻지는 못했다. 1972년 닉슨과 마오쩌둥(毛澤東)간의 미·중정상회담 때 만찬주로 마오타이가 등장하고, 아울러 이 술을 선물하면서 비로소 세계적인 명주의 반열에 올랐다. 마오타이의 예에서 보듯, 이제는 오찬이나 만찬을 곁들이는 정상회담에서 어떤 술이 건배주로 선보이느냐가 큰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과거처럼 포도주나 위스키만을 고집하지 않고 자국의 전통주로 대체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지난해 한·일정상회담에서는 고이즈미 총리가 자국의 민속주인 모리주로 건배를 제의했다. 소련에서는 보드카, 멕시코에서는 데킬라의 일종인 메스칼,노르웨이에서는 벌꿀술인 미드가 연회장의 술로 등장하곤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02년 열린 아셈(ASEM)회의에서 고창지방의 민속주인 복분자가 건배주로 채택돼 일약 유명세를 탔다. 아시아 및 유럽의 정상들이 '코리안 와인,원더풀'하며 천사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 복분자는 애주가들의 사랑 속에 품귀현상을 빚기도 했다. 오는 11월 부산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 공식 건배주가 또 다시 화제에 오르고 있다. 아직 선정단계인데, 복분자를 비롯 부산에서 생산되는 상황버섯 발효주인 '천년약속'과 찹쌀로 빚은 '화랑', 국화술인 '천국' 등이 후보군에 올라 물밑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공식연회에서의 건배주는 동질감을 형성하고 결속을 다지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세계정상들이 우리 민속주를 마시며 단합된 모습으로 세계평화와 인류행복을 기원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